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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이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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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이방원
태종 이방원, 조선 왕조의 기틀을 다지다
왕자의 난으로 권력을 잡다
사병을 없애고, 창덕궁을 새로 짓다
왕비 집안인 민씨 세력을 제거하다
전국을 8도로 나누고, 관찰사를 보내다
왕이 직접 6조의 보고를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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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이방원, 조선 왕조의 기틀을 다지다
호패국립중앙박물관“군역을 비롯한 각종 부역을 부과하려면 남자의 수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합니다.”“백성들에게 호패를 차게 하고, 군인이 될 사람들을 기록한 문서를 만들면 어떨지요?”“그게 좋겠소. 인구수를 정확히 파악해야 나라를 다스리는 데도 좋을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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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08-27
5
왕자의 난으로 권력을 잡다
호패법을 실시한 사람은 조선의 제3대 왕인 태종이에요. 조선을 세운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이죠. 그는 2차례에 걸친 ‘왕자의 난’으로 권력을 잡았어요. 그런데 왕자의 난이 일어난 이유는 무엇일까요?이방원은 새로운 왕조를 세우려 할 때 이를 반대한 정몽주를 제거했지요. 정몽주가 제거되면서 이성계는 좀 더 수월하게 조선을 건국할 수 있었어요. 그러나 이방원은 조선이 세워진 뒤 공신(공을 세운 신하)으로 선정되지 못하고 푸대접을 받았어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도전은 이방원의 배다른 어린 동생인 방석을 세자로 추천했어요.그는 국왕의 권력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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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08-27
4
사병을 없애고, 창덕궁을 새로 짓다
태종은 왕의 힘이 강한 나라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는 이를 위해 가장 먼저 왕족이나 공신들이 개인적으로 거느린 군대인 사병(私兵)을 없앴어요. 사실 가장 많은 사병을 거느렸던 사람은 이방원이었어요. 그 덕분에 두 차례의 왕자의 난에서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지요.하지만 사병은 국왕의 권력을 흔들 수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모든 군사를 국가의 군대로 만들었어요. 왕이 중심이 되어 국가를 지킬 수 있는 군사력을 마련했던 거예요. 그 때문에 왕족이나 권력 있는 신하들이 반란을 일으킬 가능성도 줄었지요.한편, 이방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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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08-27
3
왕비 집안인 민씨 세력을 제거하다
강력한 국왕 권력을 목표로 삼았던 태종은 외척들도 제거했어요. 외척은 외가나 처가 쪽의 친척을 뜻해요. 태종의 외척 가운데 부인 원경왕후의 여흥 민씨 가문이 대표적이죠.태종이 왕이 되자 사람들이 원경왕후의 친정으로 몰려들었어요. 게다가 세자인 양녕대군은 외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 외삼촌인 민무구, 민무질 형제와 매우 특별한 사이였지요. 태종은 그들이 탐탁지 않았어요. 나중에 세자가 왕위에 오르면 민씨 집안이 더욱 강해져서 정치를 어지럽게 할지도 모른다고 여겼거든요. 태종은 민씨 형제들의 속내를 떠볼 방법을 생각해 냈어요. 하루는 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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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08-27
2
전국을 8도로 나누고, 관찰사를 보내다
한양으로 도읍을 다시 옮긴 후 태종은 전국을 8도로 나누었어요. 8도는 함경도, 평안도, 황해도, 경기도,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를 말해요. 지금의 행정 구역과 비슷해요. 8도 아래에는 부·목·군·현이라는 작은 단위의 행정 구역을 두었어요. 각도에 왕이 임명한 관찰사를 보내 다스리도록 했지요.고려 시대에는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은 지역이 많았어요. 때문에 왕의 명령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고, 중앙에서 지방을 제대로 다스리기 어려웠지요. 태종은 이런 문제점을 보완하려고 했어요. 모든 지역에 지방관을 파견해 왕의 명령이 지방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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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08-27
1
왕이 직접 6조의 보고를 받다
조선의 의정부는 나라의 중요한 일을 의논하는 기관이에요.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을 비롯한 재상들이 모여 나랏일을 합의하던 최고 의결 기관이었죠. 행정을 나누어 맡아보던 6조에서 의정부에 나랏일을 보고하면 영의정 등의 재상들이 논의해서 결론을 냈어요. 마지막에 그 내용을 국왕에게 보고하면, 국왕이 최종 결정을 했지요.이후 결정된 내용은 각기 6조에서 집행했어요. 6조는 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 등을 말하는데, 각기 다른 행정 업무를 맡아봤어요. 각 부서의 우두머리는 판서라고 불렀지요. 지금의 행정 각 부 장관들과 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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