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의 이름난 집안에서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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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영은 1910년 일본에게 국권을 빼앗긴 후 형제들과 함께 가족을 이끌고 만주로 가 독립운동을 한 사람이에요. 이회영은 1867년 서울의 저동에서 태어났어요. 이회영이 태어난 저동은 오늘날 서울의 중심지인 명동 일대에요.
이회영의 집안은 조상 대대로 높은 벼슬을 했어요. 덕분에 이회영의 형제들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다른 양반집 자제들처럼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 유학을 공부했구요. 그러나 이회영은 형제들과 달리 과거에 뜻을 두지 않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집안에 기쁜 일이 생겼어요. 동생인 이시영이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을 하게 된 것이지요.
“시영아! 과거 급제를 축하한다. 나라를 생각하는 훌륭한 관리가 되도록 해라.”
“감사합니다. 형님도 곧 과거를 치르고 벼슬을 하셔야지요.”
“나는 과거를 보지 않을 거야. 유교 경전을 공부하는 것보다 전에 이상설과 함께 배웠던 신학문을 더 공부해볼 생각이야.”
이회영은 이상설보다 3살이 많았지만 둘은 어릴 때부터 같은 동네에 살면서 단짝 친구로 지냈어요. 영어와 법학 등 신학문도 함께 공부했지요.
동생이 벼슬을 하게 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친한 친구였던 이상설도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을 했어요. 하지만 과거를 보지 않겠다는 이회영의 생각은 변함이 없었어요.
이회영은 명문가에서 태어났으면서도 왜 과거를 보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을까요? 아마도 과거 시험에 합격하여 벼슬을 하는 것보다 일반 사람으로서 조선을 근대 사회로 만드는 데 앞장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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