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에 독립운동의 터전을 마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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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12월의 어느 날 이회영과 그의 형제들이 집에 모여 회의를 했어요. 그들은 식구들과 함께 만주로 가기로 정했어요. 그리고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땅을 비롯하여 자신들이 살던 집 등 전 재산을 팔았어요. 너무 급하게 땅을 팔다 보니 제값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해요.
재산을 팔아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한 이회영은 1910년 12월 가족들을 이끌고 만주를 향해 길을 떠났어요. 먼저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신의주까지 갔어요. 그리고 압록강을 건너 10대의 마차에 나누어 타고 목표로 한 만주 삼원보 근방까지 갔어요. 이곳까지 오는데 약 한 달 쯤 걸렸다고 해요.

만주로 갈 것을 의논하는 이회영과 형제들
만주에 도착한 이회영은 다른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항일운동단체를 만들고 독립군을 길러내기 위한 학교인 ‘신흥강습소(신흥무관학교)’를 세웠어요. 이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3500명쯤 되었다고 해요. 이들은 훗날 독립군으로 크게 활약을 해요. 대표적으로 ‘청산리 대첩’을 들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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