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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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1876년 조선과 강화도 조약을 맺은 이후부터 호시탐탐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 기회를 엿보고 있었어요.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나라들과 전쟁을 벌였어요. 바로 청일 전쟁(1894년~1895년)과 러일 전쟁(1904년~1905년)이에요. 두 전쟁은 모두 일본의 승리로 끝났어요.
특히 러일 전쟁 이후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일을 본격적으로 진행했어요. 그 중 가장 먼저 우리의 외교권을 빼앗았어요. 일본은 군대와 경찰을 앞세워 우리에게 을사늑약(1905년)을 강제로 맺도록 했어요.
을사늑약이 맺어졌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이 다양한 방법으로 저항했어요. 그중에는 을사늑약을 맺는데 앞장선 5명의 신하를 암살하자는 ‘오적암살단’이 있었어요.

오적암살단
을사늑약을 체결하는데 일본에게 도움을 준 친일파 박제순, 이지용, 이근택, 이완용, 권중현 등 다섯 명을 암살하려고 했다. 사진의 왼쪽부터 이기, 나철, 홍일주, 오기호이다.
대종교총본사
이회영은 ‘오적암살단’이 활동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대며 그들의 활동을 지원했어요. 그러나 몇 차례 거사를 일으켰지만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하였고 동지가 체포되면서 실체가 드러나 결국 실패했어요.
한편 이회영은 을사늑약이 일제의 강압으로 맺어지고 고종 황제가 을사늑약을 인정하는 도장을 찍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것을 들었어요. 국제법을 공부했던 이회영은 이렇게 맺어진 조약이 무효임을 알았어요. 그래서 이 사실을 세계 여러 나라에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때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어요.
“우당, 좋은 소식이 있네. 1907년 6월경에 네덜란드의 헤이그에서 세계 44개국이 모여서 만국평화회의를 개최한다고 하네.”
“그게 정말인가? 을사늑약이 무효임을 알릴 좋은 기회이군. 고종 황제 폐하께 이 소식을 알리고 특사 파견을 건의해야겠네.”
이회영은 당시 ‘대한매일신보’라는 신문을 펴내고 있던 양기탁으로부터 만국평화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이회영은 고종 황제를 직접 만나 이 사실을 알리고 싶었어요. 그러나 일본의 감시를 피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이회영은 고종 황제를 직접 만나는 것을 포기했어요. 그 대신 이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환관을 통해 특사 파견 계획을 알렸어요.
얼마 후 고종 황제는 일본의 눈을 피해 이름이 쓰여 있지 않은 특사 임명장에 황제의 도장을 찍어 보냈어요. 이회영이 추천한 인물을 특사로 파견하겠다는 것이었죠.
헤이그 특사로 임명된 이준은 부산에서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로 갔어요. 그곳에서 이상설을 만나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러시아의 수도인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했어요. 이곳에서 이위종이 합류하였고, 세 명의 특사는 마침내 네덜란드 헤이그에 도착했어요. 그리고 을사늑약이 무효임을 주장하는 활동을 펼쳤지만 일본의 방해로 성공을 거두지 못했어요. 그 후 일본은 헤이그 특사 사건을 구실 삼아 고종 황제를 강제로 물러나게 했어요.
그 후 일제는 1910년 무력을 앞세워 우리나라를 강제 병합하여 식민지로 만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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