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산 장려 운동이 일어나다
본문
1920년대 들어서 일제는 회사령을 폐지하였어요. 회사령은 총독부의 허가 없이는 회사를 세울 수 없도록 한 제도에요. 회사령 폐지로 우리 기업들은 다소나마 숨통이 트였어요. 그러나 곧 우리 기업들은 일제의 보호를 받는 일본 기업들과 힘겨운 경쟁을 해야 하는 무척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어요.
당시 일본 상품은 총독부의 지원으로 값도 싸고 품질도 좋았어요. 그렇다 보니 우리 기업의 상품은 경쟁에서 밀렸지요.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우리 기업은 살아남기 힘들었어요. 이런 상황에서 1920년대 초 조만식의 주도로 평양에서 물산 장려 운동이 시작되었어요. 당시 평양에는 경성 방직 회사, 메리야스 공장과 같은 민족 자본에 의해 세워진 우리 기업들이 많았어요.
물산 장려 운동은 말 그대로 우리나라 사람이 생산한 물건을 사서 사용하자고 권하고 격려하는 운동이에요. ‘내 살림 내 것으로’, ‘조선 사람 조선 것으로’, ‘우리는 우리 것으로 살자.’ 등의 구호를 내세웠어요. 좀 비싸더라도 우리 기업이 만든 물건을 사서 쓰면 우리 민족 기업이 발전하고, 그게 바로 나라를 살리는 길이라는 생각이었어요.

경성방직 생산 광목 광고(동아일보 1923년 8월 13일)
‘조선을 사랑하시는 동포는 옷감부터 조선산’을 쓰자는 등의 문구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동아일보
물산 장려 운동은 곧 다른 지역으로 퍼져 나갔고, 1923년 1월 서울에서 전국 규모의 ‘조선물산장려회’가 조직되었지요.
… 우리 조선 사람의 물건을 장려하기 위해 조선 사람은 조선 사람이 만든 물건을 사서 쓰고, 조선 사람은 단결하여 우리가 쓰는 물건을 스스로 제작하여 공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 이와 같은 각오와 노력이 없이 어떻게 조선 사람이 그 생활을 유지하고 그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겠는가. …
-「조선물산장려회 취지서」

조선물산장려회 취지서
“조선 사람은 조선 사람이 지은 것을 사서 쓰자”는 내용의 물산 장려 운동의 취지를 담고 있다.
독립기념관 제공
조선물산장려회는 다음과 같은 실천 사항을 정하고 사람들에게 호소하였어요. 첫째, 남자는 무명베 두루마기를 입고 여자는 검정 물감을 물들인 무명 치마를 입는다. 둘째, 설탕, 소금 등을 제외한 식료품은 우리 땅에서 생산된 것만 먹는다. 셋째, 일상용품은 우리 토산품을 사용하되, 부득이한 경우 외국 생산품을 사용하더라도 될 수 있는 대로 절약을 한다.
조선물산장려회는 서울과 평양 이외에 다른 지역에도 많은 지회를 조직하고, 국산품 애용을 주제로 한 강연회나 시위 등을 활발히 벌여 나갔어요. 이때 학생들은 조선 물산을 장려하여 자급자족 정신을 기를 목적으로 자작회를 만들어 동참하였어요. 또 부녀자들은 토산 애용 부인회를 만들어 물산 장려 운동에 적극 동참하였지요.

조선물산장려회의 회보
독립기념관 제공
그런데 물산 장려 운동에 참여한 일부 기업가들은 우리 기업이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총독부가 주는 보조금도 적극적으로 받아야 한다고까지 주장했어요. 순수한 애국심으로 우리 기업의 상품을 사 쓴 소비자들은 배신감을 느꼈지요.
게다가 물산 장려 운동으로 고무신같이 많이 팔린 일부 물건은 값이 올라 서민들은 그나마 사 쓰지도 못하는 일이 생겼어요. 이 운동으로 이득을 보는 건 먹고살 만한 부자와 상인들이었고, 가난한 사람들은 더 힘들어져 이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지요.
그리하여 물산 장려 운동에 호응하는 사람들 수도 점차 줄어들었어요. 그 결과 아쉽게도 이 운동은 이내 시들고 말았지요.

평양 조선물산장려회의 시가지 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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