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장에 들어선 서양식 건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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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건축물들이 가장 먼저 들어서기 시작한 곳 중 하나는 부산, 인천 같은 개항장이었어요. 강화도 조약으로 가장 먼저 외국 문물이 들어온 곳이기 때문이지요. 부산은 강화도 조약으로 맨 처음 개항한 곳이지요. 일제가 개항 이후 경제적 수탈과 군사적 침략을 위한 발판으로 삼은 곳이에요.
일제는 침략을 위한 기반을 닦으며 여러 가지 근대 시설과 건축물을 세웠어요. 먼저 부산 초량에 있는 옛 왜관(倭館) 터에 일본인들이 모여 살 수 있는 곳을 만들었어요. 일본식 가옥도 많이 지어졌어요.
일본은 이 지역을 조선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활동하며 살 수 있는 곳(조계지)으로 만들었어요. 그리고 이곳에 영사관, 경찰서, 재판소 등도 세웠지요. 한편 전국 곳곳에 철도가 놓였고, 일본은 우리나라의 물자들을 실어가기 위해 부산의 항구를 정비했어요. 항구 주변에도 서서히 여러 가지 근대 시설과 건축물들이 들어섰어요.

부산 근대 거리(재현)
부산근대역사관
부산과 함께 인천(제물포) 개항장에도 근대 건축물이 들어섰어요. 외국의 외교사절과 상인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인천의 모습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어요. 일본이 조계지를 만들었고, 뒤이어 청도 그 옆에 조계를 만들었어요.
당시 지어진 옛 일본 18은행(인천개항장근대건축전시관), 답동 성당, 옛 인천 우체국(인천 중동우체국) 등은 지금도 남아 있어 개항 당시의 모습을 엿볼 수 있게 해주고 있어요. 3층짜리 벽돌 건물인 대불 호텔은 얼마 전 복원되기도 했어요.
일제는 부산, 인천 등 개항장 중심지에 수탈을 위한 시설과 건축물을 세워 일본인의 거리로 만들었어요. 한국 사람들의 삶의 터전을 하나 둘 빼앗아 간 거예요.
현재는 100여 년 전에 세워진 건축물들이 대부분 사라지고, 그 터만 남아 있지요. 하지만 부산과 인천 등에 여러 전시관이 만들어져 개항 당시 역사를 알 수 있어요. 부산 근대역사관은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 지점이었던 곳이고, 인천개항박물관도 옛 인천 제1은행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 그 의미가 더욱 크지요.

옛 인천일본제1은행지점(현재 인천개항박물관, 인천 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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