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시설

역사 속 작은 이야기: 백정에서 의사가 된 박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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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3년 11월 1일 에비슨 선교사가 제중원을 새로 맡게 되었어요. 그는 병원도 새롭게 단장하고, 중단했던 의학 교육도 다시 시작했어요. 어느 날 에비슨은 다급한 요청을 받고 백정 마을로 왕진을 가게 되었어요. 그곳에는 한 백정이 장티푸스를 앓고 있었어요.


에비슨의 발 빠른 조치로 백정은 위험한 고비를 넘겼어요. 에비슨은 그 백정이 완전히 나을 때까지 규칙적으로 그의 집에 찾아가 진찰을 하고 꼼꼼하게 살펴주었어요. 그 백정의 이름은 박성춘이었어요.


“천한 백정인 제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사람대접 받습니다.”


박성춘은 양반이건 백정이건 개의치 않고 정성껏 치료해주는 에비슨에 감명을 받았고, 이 인연을 계기로 에비슨을 믿고 따랐어요. 그러던 어느 날 박성춘은 에비슨을 찾아가 간절히 부탁하였어요.


“우리 아들 서양이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박사님께서 계시는 병원에서 의사 공부 좀 시켜 주세요.”


에비슨은 박서양을 제중원으로 데려와 아버지의 부탁대로 서양 의학 공부를 시켰어요. 의학 공부가 매우 힘들고 고단했지만, 그는 의사가 진정한 사람의 길을 가는 것이라 여기고 열심히 노력했어요.

1908년 6월 3일 드디어 제중원 의학교의 첫 졸업식이 왔어요. 알렌이 조선에서 의학교육을 시작한지 22년 만이었고, 에비슨이 의학교육을 시작한 지 10년 만에 얻은 첫 결실이었어요. 장차 의사가 될 일곱 명의 졸업생들이 모습을 나타냈어요.


이들이 바로 조선 최초의 의사들이에요. 여기저기서 박수 소리가 쏟아져 나왔어요. 박서양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아버지에게 감격의 소감을 말했어요.


“백정의 신분으로 제중원 의학교에 입학해서 의학 공부를 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했어요. 그런데 내가 정말 의사가 될 수 있으리라고는 믿어지지 않아요.”


졸업식에 참석한 박성춘은 감동에 북받쳐 눈물을 글썽였어요.


“우리 서양이가 드디어 의사가 되는구먼.”


백정이었던 아버지의 설움을 박서양은 익히 잘 알고 있었어요. 조선에서 백정은 그야말로 개, 돼지만도 못한 존재였어요. 백정이 지나면 냄새가 난다고 피했고, 심한 경우엔 침을 뱉는 사람도 있었지요.


“제중원이 나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어요. 제중원 덕분에 의사의 꿈을 꿀 수 있었고, 의사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어요.”

1909년 말에 박서양은 제중원 의학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어요.


“의사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병을 고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환자에 대한 책임감, 환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마음 없이는 진정한 의사가 될 수 없습니다.”


박서양은 해부학 등을 가르치며 외과 환자를 진료했어요. 또 학생들에게 자신이 배웠던 제중원 의학교 정신을 전하고자 노력했어요. 이후 박서양은 의사로서의 삶에 안주하지 않고 간도로 이주하여 구세병원과 숭신학교를 세우고 독립운동에 헌신하였어요. 그는 언제 어디서나 환자에 대한 책임을 다할 뿐이라고 생각하였어요. 그것이 제중원의 참된 정신이자, 진정한 의사의 마음가짐이라 믿었어요.


내가 만약 100여 년 전에 살고 있었다면 새로 들어온 서양의 문물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지금 보면 시시하다는 생각마저 들겠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매우 놀랍고 신기하지 않았을까요? 지금 우리 주변에 나를 놀랍게 하는 새로운 문물은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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