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탁 통치 실시를 둘러싸고 갈등이 발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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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12월, 소련의 모스크바에서 미국, 소련, 영국 세 나라의 외무장관이 모여 회의를 했어요.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의 세계 질서에 대해 논의를 했던 것이죠. 이 회의에서 우리나라 문제도 다뤄졌어요.
회의 결과 한반도에 우선 한국인들에 의한 민주주의 임시 정부를 세우겠다는 것, 이를 위해 미국과 소련의 대표가 모여 논의하는 위원회를 개최한다는 것, 새로 수립되는 임시 정부와의 협의를 거쳐 한반도에 통일 정부 수립 전에 미국, 소련, 영국, 중국 네 나라가 일정 기간 동안 우리나라를 대신 맡아 관리하는 신탁 통치를 실시할 것 등을 결정을 했어요.
이 소식이 우리나라에 전해지자 신탁 통치 문제를 둘러싸고 큰 갈등이 발생했어요. 어떤 사람들은 강대국들이 정한 합의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고, 또 어떤 사람들은 다른 나라의 간섭 없이 우리 힘으로 즉각 독립해야 한다며 신탁 통치를 강력하게 반대했어요.
또한 미국과 소련이 합의했던 신탁 통치가 소련측만이 주장한 것으로 국내에 잘못 알려지며 갈등을 증폭시키기도 했습니다. 신탁 통치를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 사이에 갈등이 커지면서 우리 민족의 힘이 하나로 모이기 어려워졌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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