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 글을 써 사람들을 일깨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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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어느 날, 신채호에게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어요. 독립협회에서 일할 때 가까이 지내던 장지연 선생이었어요. 그는 『황성신문』의 사장이었어요. 그는 넌지시 신채호에게 물었어요.
“그런데 단재, 듣자 하니 지난 봄 성균관 교수직에 임명되었다던데, 어째서 벼슬을 마다하였는가?”
“지금의 어려운 상황에서 나라를 구하는 일이 먼저라 생각합니다.”
“나도 동감일세. 이러다가 나라가 쓰러지고 말 거야. 한성으로 가서 나와 함께 『황성신문』을 이끌어 가면 어떻겠나.”
신채호는 『황성신문』에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였어요. 그는 신문에 주로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켜야 한다’, ‘백성들은 배워서 알아야 하고, 힘을 키워야 한다’, ‘백성들 모두가 우리나라의 뿌리와 역사를 알아야 한다’ 등의 글을 썼어요.

신채호의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
신채호의 뛰어난 문장력과 굽힘 없는 글이 신문에 오를 때마다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어요. 사람들은 신채호의 글에 감동하였고 모이기만 하면 너도나도 칭찬하기에 바빴어요. 이제 신채호의 글은 곧 백성들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으로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주었어요.
1905년 을사늑약의 내용이 발표되자 곳곳에서 반대 운동이 일어났어요. 『황성신문』도 을사늑약에 반대하는 논설을 실었지요. 이에 일제는 『황성신문』을 그냥 두지 않았어요. 장지연을 비롯한 신문사 간부들을 구속하고 신문 발행을 정지시켜 버렸어요.
이 때문에 신채호도 『황성신문』을 떠나 『대한매일신보』로 자리를 옮겼어요. 『대한매일신보』는 외국인이 만든 신문이어서 일제의 검열을 받지 않았어요. 그는 『대한매일신보』에 을사늑약과 일제의 침략을 반대하는 논설을 계속해서 있었어요.
신채호는 『대한매일신보』 논설란에 ‘이날에 또 목 놓아 크게 운다.’라는 논설을 썼어요. 그가 쓴 논설을 읽고 울분을 느끼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사람들은 그의 글을 돌려 읽고 또 돌려 읽었어요. 그의 글은 시름에 잠겨 있는 많은 사람을 일깨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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