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부주의자로 활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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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는 일제를 상대로 독립운동을 하면서 독립의 문제가 우리 민족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생각하였어요. 그는 정부가 없어도 개인의 자유가 온전히 보장되는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하고자 하였어요.
신채호는 점차 무정부주의에 대한 생각이 강해졌어요. 이제 나라를 뛰어넘어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뭉쳐야 한다고 생각하였어요. 이윽고 그는 다른 여러 나라의 무정부의자들과 함께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게 되었어요.
‘정부가 있으니까 권력을 잡으려고 싸움을 한다. 정부가 없다면 서로 권력을 잡겠다고 싸우지 않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모든 힘을 독립투쟁으로 모을 수 있을 것이다.’
1928년 신채호는 베이징에서 열린 무정부주의 독립운동가들의 회의에 참석하였어요. 이 회의에서 독립운동에 쓸 자금 마련을 위해 가짜 돈을 만들기로 하였어요.
신채호는 무장투쟁 자금 마련을 위해 타이완으로 갔다가 그만 일제 경찰에 붙잡히고 말았어요. 그는 조사를 받는 동안 혹독한 고문을 받았어요. 재판 시작 전에 그는 당당하게 말하였어요.
“다른 방법도 있었을 텐데 가짜 돈 만드는 일은 나쁜 일이잖소?”
“우리 동포가 나라를 찾으려고 한 일은 모두가 정당하다.”
1930년 신채호는 징역 10년을 선고받았어요. 신채호가 뤼순에서 감옥 생활을 시작하자, 우리나라에 있는 동지와 친구들은 신채호의 국사 연구 업적을 동포들에게 알리는 운동을 폈어요.

조선사 연구초와 조선상고문화사
독립기념관, 한국학중앙연구원
그가 1924년부터 『동아일보』에 발표한 역사 논문들이 묶여서 『조선사연구초』로 나왔어요. 그가 베이징에서 쓴 ‘조선상고사’ 원고들이 『조선일보』에 실렸어요. 또 『조선일보』는 신채호의 역사 논문인 「조선상고문화사」를 1931년부터 40회에 걸쳐 실었어요.
신채호의 글은 많은 사람에게 애국심을 일깨워 주었어요. 출판사와 신문사에는 사람들이 보낸 편지들로 가득 찼어요.
“신채호 선생의 글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가 어떤 민족이며, 어떻게 살아왔고, 지금 어떤 형편에 놓여 있는가를 알았습니다.”

감옥에서 역사를 연구하는 신채호
힘든 감옥 생활로 신채호의 건강은 날로 악화되어 갔어요. 그는 병보석으로 감옥에서 나갈 수도 있었지만 거부하였어요. 1936년 2월 신채호는 아무도 지켜보는 이 없는 뤼순 감옥에서 홀로 쓸쓸히 숨을 거두고 말았어요.
단재 신채호는 국민을 일깨운 참 언론인이었어요. 또한 올바른 역사를 연구하고 알린 진정한 역사학자였지요. 그리고 그 무엇보다 조국 광복을 간절히 바라던 우리나라의 독립운동가였어요.
만약 신채호가 타이완에서 체포되지만 않았다면, 그의 역사 연구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우리는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 얼마나 더 알게 되었을까요? 이제 우리도 신채호를 생각하며 우리나라의 역사를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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