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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
신채호, 우리의 역사로 일깨우다
민족 운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다
신문에 글을 써 사람들을 일깨우다
우리나라의 역사 영웅을 알리다
올바른 역사 연구로 어두운 시대를 밝히다
다른 나라 땅에서도 역사 연구는 계속되고
독립을 위해 길이 남을 명문장을 쓰다
무정부주의자로 활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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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신채호, 우리의 역사로 일깨우다
단재 신채호 생가(충남 대전시)“황성신문에 실린 단재 선생의 글을 읽었는가?”“물론이지. 그분의 글을 읽으면 내 속이 다 시원해진다니까.”“나라에서도 단재 선생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데…”『황성신문』은 1898년 장지연을 비롯한 애국지사들이 창간한 한문과 한글을 섞어 쓴 진보적인 신문이었어요. 국민들에게 독립사상을 일깨워주는 기사와 논설을 자주 실어 일제에 늘 탄압을 받았지요. 『황성신문』에 글을 쓴 단재 선생은 어떤 분일까요? 그는 신문에 어떤 내용을 실어 사람들을 일깨우려 하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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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09-01
7
민족 운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다
1880년 어느 겨울날 충청도 대덕의 산골 오두막집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어요. 이 사람이 바로 단재 신채호 선생이에요. 단재는 신채호의 호에요. 고려의 충신 정몽주가 지은 ‘단심가’라는 시에서 따온 말로 지조를 중시한 그의 삶을 엿볼 수 있어요.신채호의 집안은 콩죽도 배불리 먹지 못할 정도로 가난하였어요. 하지만 신채호는 열심히 공부하여 1898년 조선 최고의 교육기관인 성균관에 입학했어요.신채호는 성균관에 입학하고 얼마 뒤 ‘독립협회’에 가입하였어요. 어느 날 성균관으로 ‘만민 공동회를 이끌어 갈 인재를 모신다.’는 초대장이 날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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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09-01
6
신문에 글을 써 사람들을 일깨우다
1905년 어느 날, 신채호에게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어요. 독립협회에서 일할 때 가까이 지내던 장지연 선생이었어요. 그는 『황성신문』의 사장이었어요. 그는 넌지시 신채호에게 물었어요.“그런데 단재, 듣자 하니 지난 봄 성균관 교수직에 임명되었다던데, 어째서 벼슬을 마다하였는가?”“지금의 어려운 상황에서 나라를 구하는 일이 먼저라 생각합니다.”“나도 동감일세. 이러다가 나라가 쓰러지고 말 거야. 한성으로 가서 나와 함께 『황성신문』을 이끌어 가면 어떻겠나.”신채호는 『황성신문』에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였어요. 그는 신문에 주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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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09-01
5
우리나라의 역사 영웅을 알리다
신채호는 언론 활동을 하면서도 틈틈이 역사 연구에 힘을 쏟았어요. 역사 연구를 한 것도 나라를 되찾으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신채호는 1908년 고구려의 을지문덕 같은 영웅이 이 땅에 다시 나타나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을지문덕전』을 저술하였어요.“단재는 학자인데 장군을 더 높이 평가하는 이유가 무엇이오?”“우리나라가 왜 이 꼴이 되었는지 아직도 모르시오? 힘이 없기 때문이오. 지금 우리나라에 필요한 영웅은 나약한 선비가 아니라, 바로 지혜와 힘이 있고 애국심에 불타는 을지문덕 같은 장군이오.”전기를 쓰는 신채호신채호는 『대한매일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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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09-01
4
올바른 역사 연구로 어두운 시대를 밝히다
그 무렵 일본은 우리의 역사와 전통을 하찮은 것으로 바꿔 놓기 위해 일본 학자들에게 우리나라의 역사를 다시 쓰게 했어요. 일본 학자들이 쓴 우리나라 역사책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지배하려는 일을 정당화하기 위해 쓴 것이에요. 그런데도 일부 우리나라 학자나 학생들은 이 왜곡된 역사를 옳다고 믿었어요. 신채호는 이런 억지 주장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하였어요.“교활한 일본 학자들은 거짓말을 사실처럼 내세워,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게 만들려고 한다. 그러나 옛날에 일본이 우리나라를 지배한 일이 없다는 것은 그들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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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09-01
3
다른 나라 땅에서도 역사 연구는 계속되고
1910년 신민회는 독립운동에 대한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자 무관학교를 만들기 위해 신민회 간부 일부를 중국으로 망명시키기로 하였어요. 이에 신채호도 가족을 뒤로 한 채 압록강을 건넜어요.언제 돌아올지도 모를 망명길에도 신채호의 등짐 보따리 속에는 안정복이 쓴 『동사강목』 이라는 역사책이 들어 있었어요. 그는 『동사강목』을 소중히 여기며 읽고 또 읽었어요. 그에게 역사 연구는 또 하나의 독립 투쟁이었어요.“비록 나라를 잃은 몸이지만 부여, 고구려, 발해의 옛 땅을 직접 발로 밟아 보며 우리 민족의 역사에 대해 더 깊이 공부하겠노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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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09-01
2
독립을 위해 길이 남을 명문장을 쓰다
1922년 말의 어느 날, 의열단 단장인 김원봉이 신채호를 찾아왔어요. 의열단은 항일 독립운동 단체 가운데서도 활동이 가장 두드러졌어요. 조선총독부의 경찰서와 중요한 일본 기관을 폭탄으로 파괴하고, 조선 총독과 고관들, 친일파, 일본 경찰이나 군대 지휘자를 암살하는 것이 의열단의 독립운동 방법이었어요. 김원봉은 의열단이 세운 계획을 신채호에게 설명하고 도움을 청하고자 했어요.“선생님께서 의열단의 투쟁 선언문을 만들어 주셨으면 합니다.”의열단은 의열 투쟁에 대한 규범을 갖고 있지 못했어요. 때문에 일본 사람들은 그들을 마치 테러단처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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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09-01
1
무정부주의자로 활동하다
신채호는 일제를 상대로 독립운동을 하면서 독립의 문제가 우리 민족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생각하였어요. 그는 정부가 없어도 개인의 자유가 온전히 보장되는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하고자 하였어요.신채호는 점차 무정부주의에 대한 생각이 강해졌어요. 이제 나라를 뛰어넘어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뭉쳐야 한다고 생각하였어요. 이윽고 그는 다른 여러 나라의 무정부의자들과 함께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게 되었어요.‘정부가 있으니까 권력을 잡으려고 싸움을 한다. 정부가 없다면 서로 권력을 잡겠다고 싸우지 않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모든 힘을 독립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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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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