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힘을 키우기 위해 애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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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렵 일제가 을사늑약을 통해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빼앗아 갔다는 가슴 아픈 소식이 들려 왔어요. 공립협회는 일제의 침략 행위를 규탄하고 을사늑약을 거부하는 결의문을 배포하였어요.
안창호는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어요. 이제 더는 조국의 현실을 두고만 본 채 미국에 머무를 수 없음을 깨달았어요.
고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안창호는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애국심을 북돋는 연설을 했어요. 일본 경찰이 그의 행동을 일일이 감시했지만, 안창호는 아랑곳없이 더욱더 목소리를 높여 외쳤어요.
“여러분, 우리나라를 살리는 길이 있습니다. 첫째는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기르고, 둘째는 우리 스스로 힘을 기르는 것입니다. 힘이란 무력이 아닙니다. 배워서 아는 것, 그것이 진정한 힘입니다.”
안창호의 연설을 듣기 위해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어요. 강연장은 사람들로 꽉 찼어요. 힘이 넘치는 그의 연설에 많은 사람은 우렁찬 박수를 보냈어요.

사람들에게 연설을 하는 안창호
1907년 안창호는 국권을 회복하고 자주 독립국을 세우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동지들과 함께 ‘신민회’라는 항일 정치 단체를 만들었어요. 그들은 자신이 직접 연락을 할 상대 외에는 누가 같은 조직원인지 아닌지조차 모를 정도로 철저히 비밀리에 활동하였어요.
신민회는 평양에 대성학교를 세워 민족의식과 독립사상을 갖춘 애국 국민을 키우고자 하였어요. 교장 선생님이었던 안창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학생들에게 말했어요.
“나라가 없으면 나도 없다. 나라가 힘이 있어야 나도 힘을 얻을 수 있다.”

대성학교 졸업사진
국사편찬위원회
신민회는 대동강 상류에 도자기 회사도 세웠어요. 평양의 마산에서 나는 질 좋은 흙으로 도자기를 만들어 팔면 경제적으로 국민 생활에 보탬이 되리라는 생각에서였어요. 또한 서울·평양·대구 등지에 출판 사업과 서점을 겸한 태극서관도 세웠어요.
안창호는 일제의 날카로운 감시 속에서도 끊임없이 나라를 구하기 위한 여러 가지 활동을 하였어요. 이런 일들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그에게 큰 지지와 존경을 보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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