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임시 정부에서 활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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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안창호는 미국에서 3·1 운동 소식을 들었어요. 그는 대한인국민회 대표자 대회를 소집하고 포고문을 발표하였어요. 그리고 벅찬 감격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외쳤지요.
“장하다, 내 겨레! 훌륭하다, 내 민족! 이제 온 민족이 일제히 일어나 생명과 재산을 모두 바칠 각오로 대한 독립을 힘껏 외칩시다!”
고국을 떠나온 1세대 한인 이민자들은 낯선 땅에서 차별과 나라 잃은 슬픔을 겪었어요.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오렌지 농장과 사탕수수 농장에서의 고된 노동뿐이었지요. 그들은 생계를 이어가기도 빠듯했어요. 하지만 이렇게 번 돈의 반 이상을 기꺼이 조국을 되찾기 위한 독립 자금으로 내놓았어요.
안창호는 조국을 되찾기 위해 이렇게 독립 자금을 모금하였어요. 그는 독립자금을 미주 지역을 대표하여 상하이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 전달하였어요.
일제의 감시를 피해 두 달이나 걸려 상하이에 도착하였어요. 상하이의 독립 운동가들은 그런 안창호를 뜨겁게 맞아주었어요

임시정부 내무총장 국무총리/임시정부 통합 후 안창호
독립기념관
“반갑소. 선생을 내무총장으로 임명했으니 열심히 일해 주시오.”
안창호는 우선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건물을 지었어요. 그리고 연통제를 실시하고 만주에 흩어져 있는 독립군 조직을 임시 정부 아래로 통합하여 독립운동의 힘을 한데 모으고자 노력했어요.
또한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대한민국적십자회를 다시 일으켜 세웠어요. 학교를 설립하고 언론의 선전 활동에도 힘을 썼지요.
안창호는 한성, 블라디보스토크, 상하이에 수립된 3개의 임시 정부를 통합하는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쳤어요. 그리하여 상하이에 정통성을 가진 통일 정부를 세우게 되었지요. 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노동국 총판에 취임하여 여러 방면에서 독립을 위한 사업을 펼쳐 나갔어요.
안창호는 임시 정부를 중심으로 힘을 합쳐 독립운동을 펼치고자 노력하였어요. 하지만 그의 바람과는 달리 임시 정부는 분열을 거듭하였어요. 이때마다 안창호는 중재하고 통합하고자 노력했어요. 그리고 그는 높은 자리에 연연해하지 않고 묵묵히 실제적인 독립운동을 위해 힘을 쏟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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