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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회를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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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1905년에 을사늑약을 강요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아 갔어요. 이에 국내에서는 항일 의병운동이 일어났지요. 얼마 후에는 연해주 지역에서도 항일 의병 단체가 만들어졌어요. 그 단체는 동의회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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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회를 결성하는 이범윤, 최재형, 안중근




동의회는 1908년 4월 연추에 있는 최재형의 집에서 수많은 사람이 참여한 가운데 만들어졌어요. 동의회 회장은 헤이그에 특사로 다녀왔던 이위종이 맡았고, 최재형은 총재가 되었어요. 동의회 소속 의병들은 1908년 여름 두 차례에 걸쳐 두만강을 넘어 함경도 지방으로 들어가 일본에 맞서 싸우기도 했어요. 이때 의병을 이끈 사람 중에는 안중근 의사도 있었어요.

그런데 동의회의 활동은 오래가지 못했어요. 동의회의 무장 투쟁을 러시아 정부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았거든요. 게다가 조직 내부에서 의병 항쟁을 비판하는 세력까지 생겼어요. 이런 분위기에서 최재형은 의병 항쟁을 고집할 수 없었어요.


최재형은 다양한 방법으로 항일 운동에 나섰어요. 그중 하나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 의사를 도운 것이지요.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으로 떠나기 전 최재형의 집에 머물면서 사격 연습을 했다고 해요.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체포되었을 때는 그 사실을 『대동공보』라는 신문에서 자세히 보도하였는데, 당시 『대동공보』의 사장이 바로 최재형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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