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업회를 이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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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형은 1911년 연추 도헌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어요. 일제가 퍼뜨린 거짓 소문 때문이지요. 일제는 대한제국을 식민지로 만든 후 자신들에게 큰 피해를 준 최재형을 제거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러시아 국적을 가지고 있던 그를 함부로 해칠 수는 없었어요. 그래서 최재형이 대한제국의 첩자처럼 보이도록 거짓 문서를 만들었어요.
연해주에서 군사 업무를 맡았던 한 러시아 관리는 이 소문을 믿고 최재형을 추방하기로 했어요. 하지만 최재형이 해왔던 일을 잘 알고 있던 또 다른 러시아 관리가 그의 무죄를 강력히 주장하면서 추방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어요. 대신 최재형은 연추 도헌 자리에서 물러나야만 했지요. 최재형은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 후에도 꿋꿋이 독립운동을 펼쳐 나갔어요.
1911년 최재형을 비롯하여 러시아에 모여 있던 주요 독립운동가가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에서 권업회를 조직했어요. 이때 회장은 최재형이, 부회장은 홍범도가 뽑혔어요. 그 후 이상설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이 합류하면서 권업회의 규모는 점점 커졌어요. 러시아 정부는 권업회를 한인 자치 기관으로 인정했어요.
그래서 권업회는 러시아와 일본의 외교 마찰을 줄이기 위해 겉으로는 러시아에 있는 한인들의 경제, 교육 등을 장려하는 활동을 펼쳤지요.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항일 독립운동 단체의 성격을 띠고 있었어요.
권업회의 대표적인 활동으로는 『권업신문』의 발행을 들 수 있어요. 순 한글로 발행된 『권업신문』은 신채호, 이상설 등이 주로 글을 썼어요. 신문에는 권업회가 러시아 한인의 자치를 위해 각종 활동을 전개했던 내용이 담겨 있고요. 일본에 국권을 빼앗긴 8월 29일이 되면 우리 민족의 독립 의식을 높이기 위한 기사들이 실리기도 했어요.
그러나 권업회의 활동은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중단되었어요. 러시아가 이 전쟁에서 일본과 동맹국이 되면서 두 나라의 관계가 나빠질 것을 우려하여 권업회를 해산하고 『권업신문』의 발행도 막아버렸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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