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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형
최재형, 연해주의 독립운동을 이끌다
두만강을 건너 연해주로 가다
연해주 연추의 책임자로 인정받다
동의회를 만들다
권업회를 이끌다
두 개의 임시정부에서 주요 직책에 임명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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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형, 연해주의 독립운동을 이끌다
최재형 선생 기념관(연해주 우수리스크시)독립기념관“연해주 연추에 존경받는 조선 사람이 있다면서요?”“맞아요. 그곳 조선인의 집마다 이분의 사진이 걸려있었어요.”여러분은 안중근 의사를 잘 알지요? 위의 말은 안중근 의사가 1907년 연해주 연추에 가서 직접 본 것을 이야기한 거예요. 안중근 의사가 이야기한 분은 누구일까요? 그는 어떤 일을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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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08-31
5
두만강을 건너 연해주로 가다
안중근 의사가 말한 인물은 독립운동가 최재형이에요. 최재형은 1860년 함경북도 경원에서 태어났어요. 그가 태어날 무렵 조선의 상황은 매우 힘들었지요. 오랜 세도정치 끝에 1863년 고종이 왕위에 올랐으나 정치는 여전히 혼란했으며 백성의 삶은 매우 힘겨웠어요.1869년에는 조선에 홍수가 나서 큰 흉년까지 들었어요. 그러자 함경도 지역 사람들이 너도나도 짐을 싸서 고향을 떠나 두만강을 건너갔어요. 이때 9살의 어린 최재형도 아버지 손에 이끌려 큰형 부부와 함께 두만강을 건너게 되었지요. 최재형의 가족들은 청의 훈춘 지역을 지나 러시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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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08-31
4
연해주 연추의 책임자로 인정받다
세월이 흘러 러시아 선장은 나이가 들고 더는 무역선을 운항할 수 없게 되었어요. 그래서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친구 회사에 최재형을 소개했지요. 최재형은 그곳에 조그마한 상점을 열어 몇 년간 성실히 일하여 재산을 모았어요. 그 후 가족이 있는 연추로 돌아가 자신이 번 돈으로 땅을 사서 농사를 지었어요.그 무렵 러시아는 블라디보스토크부터 조선 국경 가까이에 있는 크라스노예 마을까지 군사 도로를 건설하기 시작했어요. 도로의 일부 구간에서는 조선인들이 일하고 있었지요. 이때 러시아어를 잘하는 최재형이 통역사로 일하면서 어려움을 겪는 동포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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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08-31
3
동의회를 만들다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1905년에 을사늑약을 강요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아 갔어요. 이에 국내에서는 항일 의병운동이 일어났지요. 얼마 후에는 연해주 지역에서도 항일 의병 단체가 만들어졌어요. 그 단체는 동의회에요.동의회를 결성하는 이범윤, 최재형, 안중근동의회는 1908년 4월 연추에 있는 최재형의 집에서 수많은 사람이 참여한 가운데 만들어졌어요. 동의회 회장은 헤이그에 특사로 다녀왔던 이위종이 맡았고, 최재형은 총재가 되었어요. 동의회 소속 의병들은 1908년 여름 두 차례에 걸쳐 두만강을 넘어 함경도 지방으로 들어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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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08-31
2
권업회를 이끌다
최재형은 1911년 연추 도헌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어요. 일제가 퍼뜨린 거짓 소문 때문이지요. 일제는 대한제국을 식민지로 만든 후 자신들에게 큰 피해를 준 최재형을 제거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러시아 국적을 가지고 있던 그를 함부로 해칠 수는 없었어요. 그래서 최재형이 대한제국의 첩자처럼 보이도록 거짓 문서를 만들었어요.연해주에서 군사 업무를 맡았던 한 러시아 관리는 이 소문을 믿고 최재형을 추방하기로 했어요. 하지만 최재형이 해왔던 일을 잘 알고 있던 또 다른 러시아 관리가 그의 무죄를 강력히 주장하면서 추방되는 것을 막을 수 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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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08-31
1
두 개의 임시정부에서 주요 직책에 임명되다
1914년 권업회가 러시아에 의해 해산되었지만, 독립운동가들은 다시금 독립운동을 위한 조직을 만들려고 했어요. 그 결과 1917년 ‘전로한족회중앙회’라는 조직이 만들어졌어요. 1919년 ‘전로한족회중앙회’는 ‘대한국민의회’로 확대 개편되었지요. ‘대한국민의회’는 우리나라 밖에서 만들어진 임시정부 중 하나에요. 최재형은 ‘대한국민의회’에서 외교부장으로 임명되었어요.한편 1919년 3·1운동 후 중국 상하이에서 이시영, 이동녕, 신규식 등의 독립운동가가 모여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했어요.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최재형은 초대 재무총장으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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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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