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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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 의병 활동을 전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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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일제가 고종 황제를 강제 퇴위시키고 대한 제국의 군대마저 해산시켰어요. 이에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활발하게 활동하자, 일제는 의병을 탄압하기 위해 민간인들이 가진 총을 거둬들이는 법령을 시행했어요. 이에 따라 홍범도 등 산포수 생활을 하던 사람들은 생계를 크게 위협받았어요.


“산포수에게서 총을 빼앗아 가는 것은 우리 모두의 입에 거미줄을 치려는 술책이다!”

“일본놈들이 위협해도 우리의 목숨과도 같은 이 총만큼은 내어줄 수 없다.”


“이대로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는 없다. 대한 제국 산포수의 무서움을 일본놈들에게 보여주자!”


이름난 포수였던 홍범도와 그가 이끈 함경도 포수들은 이때부터 본격적인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어요. 대부분의 의병이 어려움 속에서도 항일투쟁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특히 전라도 지역의 의병과 홍범도가 이끈 함경도 의병들이 뛰어난 활약을 펼쳤어요.


홍범도가 이끈 의병 부대는 포수 출신들이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산을 잘 타고 기동력이 뛰어났어요. 또한 평민 출신이었던 홍범도 스스로 자신의 군복과 말단 병사의 군복에 차이를 두지 않았기 때문에 전우애가 더욱 끈끈했어요. 홍범도가 이끈 함경도 의병의 명성은 나날이 높아갔어요.


당시 일본군은 홍범도를 ‘나르는 의병 대장’, ‘비(飛) 장군’ 등으로 불렀어요. 이 이름처럼 일본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해 덕분에 함경도 사람들 사이에서는 홍범도를 칭송하는 민요까지 만들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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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의 모습

독립기념관




의병들의 뛰어난 활약에 놀란 일제는 의병들을 대대적으로 진압할 계획을 세웠어요. 그리고 의병 대장 홍범도를 잡기 위해 그의 가족들을 인질로 잡았어요. 일제는 인질로 잡은 첫째 아들을 홍범도에게 보내 항복을 권유했어요. 첫째 아들을 본 홍범도는 불같이 화를 냈어요.


“네가 비록 내 자식이지만 일본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일본 놈이 다 되었구나. 너는 일본놈의 말을 듣고 나에게 해를 끼치는 못난 놈이다.”

홍범도의 호통에 잘못을 뉘우친 그의 첫째 아들은 홍범도가 이끈 의병에 가담하였어요. 일제의 인질이 된 홍범도의 아내는 남편에게 귀순을 권유하는 편지를 쓰라는 일본군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버텼어요. 그래서 모진 고문을 받다가 감옥에서 죽고 말았어요. 둘째 아들 또한 고문을 받은 뒤 나중에 폐병으로 죽었어요. 첫째 아들 역시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했어요.


잇따른 가족의 비극 속에서도 홍범도는 일본에 맞서 무장 투쟁을 계속 이어나갔어요. 당시 홍범도 부대가 일본군과 맞서 싸운 전투는 37회나 되었고, 이는 의병 부대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활약이었어요.


그러나 이러한 활약 속에서도 홍범도는 큰 고민에 빠졌어요. 그것은 바로 일본에 맞서 싸울 무기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었어요. 아무리 용맹스러운 홍범도 의병 부대였지만 부족한 탄약은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어요. 결국 홍범도는 무기를 구해 새로운 무장 항일 투쟁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1910년 고국을 떠나 망명길에 올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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