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개항장 제물포의 이모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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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개항하면서 부산, 원산과 함께 인천에도 일본인을 비롯한 동서양의 외국인들이 많이 들어왔어요. 일본을 시작으로 조선은 청, 미국, 영국,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 프랑스와도 조약을 맺었기 때문이에요. 제물포 주변 거리에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외교관, 선교사, 외국 군인들을 볼 수 있게 되었죠.

옛 모습을 복원한 대불호텔
1888년 4월 5일 도착. 끝없이 지껄이고 고함치는 일본인, 중국인 그리고 한국인들. 한복판에 짐들이 옮겨져 있었다. 대불호텔로 향했다. 놀랍게도 호텔에서는 일본어가 아닌 영어로 손님을 모시고 있었다. 서양 음식이 잘 마련되어 있었고 입에도 맞았다.
- H. G. Appenzeller, 「한국에서 우리의 사명 Our Mission in Korea」-
선교를 위해 조선에 온 아펜젤러는 다양한 나라 사람들이 모여 생활하는 제물포의 모습에 놀라워했어요. 제물포에 도착한 외국인들은 항구와 가까운 곳에 있었던 대불호텔에 묵었어요. 호텔에서는 서양식 침실뿐만 아니라 서양식 음료와 음식을 제공받을 수 있었어요.
증기선을 타고 온 외국 사람들은 통해 가배차라 불렸던 커피를 포함해 맥주, 위스키, 설탕, 빵, 버터, 잼 등 서양 문물을 제물포로 들여왔어요. 이 서양 문물은 조선으로 조금씩 퍼져 나갔어요.
일본 조계지에는 일본식 주택이 많이 들어섰어요. 상인이 많았던 일본 사람들은 1층은 상점, 2층은 주거용으로 구성된 건물을 지었어요. 지금의 주상복합건물이지요. 주택으로 2층 건물을 짓지 않았던 조선의 집과는 많이 달랐어요.
기와나 다다미 등 일본식 재료에 일본 방식으로 집을 지은 일본 조계지는 일본에 온 것 같은 생각을 갖게 했어요. 일본 영사관이나 일본 은행 등 중요한 건물은 벽돌을 이용해 서양식으로 지었어요.

옛 청과 일본 조계지의 모습을 살펴 볼 수 있는 인천항의 건물들
청 조계지에도 중국식 주택이 늘어났어요. 중국 사람도 상점과 주거용으로 이루어진 주상복합건물을 지었어요. 다만 자신들에게 익숙한 방식을 따라 2층에는 테라스를 만들었죠. 일본 사람들은 집을 지을 때 나무판을 사용했다면 중국 사람들은 붉은 벽돌을 많이 사용하였어요.
청 영사관을 중심으로 큰 길을 따라 상인들이 만든 큰 점포들이 줄줄이 만들어졌어요. 점포 뒤로는 여관, 잡화상, 주택들이 들어섰어요. 중국 요리를 하는 음식점도 늘어났어요.
햇빛이 잘 드는 도로 옆에는 중국 요리의 재료인 검은 해삼과 전복을 말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거리에는 춘장 볶는 냄새가 가득했어요. 이때 청 조계지에서 춘장을 볶아 만든 국수는 ‘자장면’이란 이름으로 전국에 퍼져갔고, 이제는 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가 되었어요.
1899년 경인철도가 개통되었어요. 서울에서 제물포까지 마차를 이용하면 9시간 정도 걸리던 길은 이제 기차를 이용하면 2시간이면 갈 수 있었어요. 기차와 함께 더 가까워진 제물포로 서울 사람들이 삼삼오오 몰려와 낯선 중국 요리를 즐겼어요. 이런 모습은 지금도 남아 많은 사람이 제물포의 차이나타운을 찾아 여러 중국 요리를 즐기고 있어요.

경인선 철도 : 기차 모형(인천개항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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