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개항장 유적

역사 속 작은 이야기: 인천항에 큰 배가 어떻게 정박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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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물포는 밀물과 썰물 때 바닷물의 높이 차가 10m 이상 나고, 갯벌이 넓어 밀물 때가 되어야 땅 가까이 배를 댈 수 있었어요. 더군다나 크기가 큰 증기선은 밀물 때도 포구 가까이 정박할 수 없어서 주로 월미도 근처 외항에 머물렀어요. 개항과 함께 외국과의 교류가 늘어나면서 포구 멀리 정박한 배에서 사람과 물자를 내리고 싣는 것은 매우 불편한 일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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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 제물포에 부두를 만드는 모습

화도진도서관




1885년 사람들은 갯벌에 돌을 쌓아 부두를 만들고, 부두를 더 늘리기 위해 바다 쪽으로 나무 말뚝을 줄줄이 박아 잔교(棧橋)를 만들었어요. 잔교를 이용해 썰물 때에도 멀리 떨어진 바닷가에서 쉽게 물건을 내리고 싣기 위해서였지요.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얕은 바닷물의 깊이는 문제가 되었고, 늘어나는 물자를 처리하는 것이 여전히 힘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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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제물포 부두 모습

화도진도서관




나라의 수도와 가까워 가장 중요한 항구였지만 사용하기에 매우 불편했던 인천항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해답은 갑문(Dock)이었어요. 커다란 갑문으로 물길을 막아 썰물 때에도 바닷물의 수위를 높게 유지했어요. 바닷물이 높아지자 내항에도 큰 배가 정박할 수 있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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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항에 있던 배는 어떻게 내항으로 들어왔을까요? 외항에 있던 배를 두 개의 갑문 안에 넣고 수문을 열어 물을 채웠어요. 그리고 내항과 물의 높이를 같게 만들었어요. 내항과 물의 높이가 같아지면 갑문을 열어 배가 내항으로 들어오게 해요.

이러한 원리로 배는 바닷물의 높이와 상관없이 언제나 안전하게 부두 가까이 정박할 수 있었어요. 갑문이 만들어지자 인천항은 더 많은 사람과 물자를 더 편리하게 운송할 수 있게 되었어요.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무력으로 지배하고 약탈하던 제국주의 시대! 제물포(인천항)는 개항되면서 조선 백성을 위해 사용되기보다는 일제가 우리나라의 경제력과 국권을 빼앗는데 더 많이 사용되었어요.


광복 이후에도 인천항은 부산항과 더불어 우리나라가 생산한 물품을 수출하고, 외국의 물품을 수입하는 가장 중요한 항구로 이용되었어요. 인천항이 수도권의 중심 무역항으로 역할을 다하면서 우리나라의 경제는 더욱 발전했어요. 개항을 하며 부강한 조선을 원했던 백성들의 꿈이 이제야 이뤄진 것이죠.


인천항에 지금도 남아있는 여러 조계지 건물들을 보며 스스로 나라를 지키지 못했던 백성들의 아픔을 생각해 보아요. 그리고 세계 속 강한 나라로 성장한 지금 우리나라는 또 어떤 미래를 준비해야할지 생각해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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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미도를 향해 바라본 인천항과 그 주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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