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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조선의 시작, 인천 개항장 유적
인천 청·일조계지 경계 계단(인천 중구)문화재청“부두에 내리는 저 일본군은 뭐 하러 왔대?”“삼남 지방의 동학도와 전쟁을 하러 왔다는군.”“아니 남의 나라 군대가 우리나라 일에 왜 참견을 한단 말인가?”1894년 동학 농민 운동이 일어났어요. 그러자 일본군 수천 명이 한성에서 제일 가까운 항구인 인천의 제물포로 들어왔어요.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인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말이에요. 하지만 일제의 속셈은 조선을 차지하는 것이었어요.한말 요동치는 조선의 역사 속에서 제물포는 어떤 역할을 했을까요? 제물포를 통해 우리는 어떤 역사를 알 수 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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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09-01
3
조선 개항의 아픔을 간직한 인천항(제물포)
조선은 운요호 사건을 계기로 1876년 일본과 강화도 조약을 맺고 개항을 했어요. 개항은 항구를 열고, 다른 나라와 무역을 하며 교류하는 것을 말해요. 나라 사이의 무역은 평등한 조건에서 이뤄져야 했지만 일본의 무력에 밀려 체결한 강화도 조약은 결코 평등하지 않았어요.조선은 강화도 조약에 따라 제일 먼저 부산항을 일본에 열었어요. 일본은 부산 초량에 있는 옛 왜관(倭館) 터를 일본인들이 모여 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들었어요. 그리고 영사관, 경찰서, 재판소 등을 만들고, 조선의 법이 아닌 일본의 법으로 통치하였어요.다른 나라에서 외국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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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09-01
2
인천 개항장 제물포의 이모저모
조선이 개항하면서 부산, 원산과 함께 인천에도 일본인을 비롯한 동서양의 외국인들이 많이 들어왔어요. 일본을 시작으로 조선은 청, 미국, 영국,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 프랑스와도 조약을 맺었기 때문이에요. 제물포 주변 거리에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외교관, 선교사, 외국 군인들을 볼 수 있게 되었죠.옛 모습을 복원한 대불호텔1888년 4월 5일 도착. 끝없이 지껄이고 고함치는 일본인, 중국인 그리고 한국인들. 한복판에 짐들이 옮겨져 있었다. 대불호텔로 향했다. 놀랍게도 호텔에서는 일본어가 아닌 영어로 손님을 모시고 있었다. 서양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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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09-01
1
역사 속 작은 이야기: 인천항에 큰 배가 어떻게 정박할 수 있을까?
제물포는 밀물과 썰물 때 바닷물의 높이 차가 10m 이상 나고, 갯벌이 넓어 밀물 때가 되어야 땅 가까이 배를 댈 수 있었어요. 더군다나 크기가 큰 증기선은 밀물 때도 포구 가까이 정박할 수 없어서 주로 월미도 근처 외항에 머물렀어요. 개항과 함께 외국과의 교류가 늘어나면서 포구 멀리 정박한 배에서 사람과 물자를 내리고 싣는 것은 매우 불편한 일이었어요.1885년 제물포에 부두를 만드는 모습화도진도서관1885년 사람들은 갯벌에 돌을 쌓아 부두를 만들고, 부두를 더 늘리기 위해 바다 쪽으로 나무 말뚝을 줄줄이 박아 잔교(棧橋)를 만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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