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많이 살던 곳 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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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은 왜 경복궁으로 돌아가지 않고, 정동에 있는 경운궁으로 갔을까요? 정동 일대에는 러시아 공사관 이외에도 여러 나라의 공사관이 있었어요. 또 서양인들도 많이 살았구요. 그러니 일본의 간섭을 피하며 외교활동을 하기에 좋은 곳이라 생각했지요.
정동에서 서양인들이 처음 살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요? 미국 외교관이 처음 이곳에 오면서부터예요. 우리나라는 1876년 강화도 조약을 맺어 일본에게 부산 이외에도 인천항과 원산항을 열었어요.
그 후 청은 일본이 조선에서 세력을 넓히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국과 수교할 것을 조언했어요. 조선은 이를 받아들여 1882년 미국과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을 맺어요. 이때 우리나라에 미국 외교관이 처음으로 오게 된 것이죠.

정동에 오는 미국 외교관의 모습
그 후 영국, 독일, 프랑스, 러시아 공사관 등이 하나둘씩 만들어지면서 정동에 사는 서양인이 늘어났어요. 정동에는 서양의 외교관만 있었던 것이 아니에요. 외국인 선교사들도 많이 와서 살았답니다. 그들은 자신이 믿는 종교를 우리나라 사람에게 알리고 싶어 했어요.
선교사 중 가장 먼저 온 사람은 호러스 뉴턴 알렌이에요. 알렌은 원래 중국에서 선교 활동을 하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우리나라에 미국 공사관이 생기면서 미국인을 치료하는 의사로 오게 되었어요.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나 명성 황후의 친척이었던 민영익이 칼을 맞아 부상당하자 치료를 해주었어요. 덕분에 알렌은 고종의 마음을 얻고 여러 가지 지원을 받을 수 있었어요.
알렌에 이어 언더우드, 아펜젤러 등의 선교사들이 들어왔어요. 그들은 각각 새문안교회와 정동제일교회를 세웠어요. 이 교회들은 지금도 정동에 가면 볼 수 있어요. 이외에도 영국 대사관 옆에는 성공회 성당이 만들어지고 구세군 사관학교도 세워졌어요.
대한 제국 시기 정동은 정치의 중심지가 되었어요. 황제가 머물던 궁궐인 덕수궁과 여러 외국 공사관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대한 제국 시기 고종은 덕수궁을 중심으로 하여 서울을 새롭게 만들려는 도시계획도 세웠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한 제국의 역사는 오래가지 못했어요. 1910년 일본이 대한 제국을 식민지로 만들었거든요. 이에 따라 정동은 더 이상 정치의 중심지 역할을 할 수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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