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정부를 세우기 위해 노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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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 정부를 세우는 문제를 놓고,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지만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어요. 미국과 소련이 연 회의에서 결론이 나지 않자 이승만은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통일 정부를 고대하나 여의치 않으니, 우리는 남쪽만이라도 임시 정부, 혹은 위원회 같은 것을 조직하여 38선 이북에서 소련이 물러나도록 세계에 호소해야 할 것입니다.”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 의견을 발표한 것이지요. 이에 비해 김구는 다른 입장이었어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기 위해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나 하나의 편안함을 위해 갈라진 정부를 세우는데 협력하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한반도 문제가 유엔으로 넘겨졌고, 유엔에서는 남북한 총선거를 하도록 결론을 내렸어요. 하지만 소련과 북한이 유엔의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유엔에서는 남한만이라도 총선거를 할 것을 결정했어요. 그러자 이승만은 환영했고, 김구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지요.

38선을 넘고 있는 김구 일행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김구는 38선을 넘어 북으로 가기로 마음먹었어요. 북에 있는 김일성을 만나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한 협상을 벌이기 위해서였지요. 하지만 이런 노력도 물거품이 되었어요.
결국 1948년 5월 10일 남한만의 총선거가 시행되었어요. 남북 분단을 염려하여 남한만의 총선거를 반대하던 김구는 5·10 총선거에 참여하지 않았어요. 1948년 8월 15일 남한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고, 1948년 9월 9일 북한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이 선포되었어요. 이제 남과 북에는 사실상 서로 다른 정부가 들어서게 되었답니다.
1949년 6월 26일, 김구가 머물던 경교장에서 총탄 소리가 들려왔어요. 김구는 안두희(육군 포병 소위)라는 사람이 쏜 총탄에 머리를 맞고 숨을 거두었지요. 그의 죽음 소식에 많은 사람이 경교장으로 몰려와 눈물을 흘렸고, 온 국민도 안타까워했어요.

총탄에 뚫린 유리창을 통해 본 경교장 앞뜰과 조문하는 시민들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안두희는 왜 김구를 죽인 것일까요? 지금도 정확한 이유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친일파 등 김구와 정치적인 생각이 달랐던 사람들에 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 많아요.
김구 선생이 꿈꾸었던 세상은 아직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남북은 분단된 채 살아가고 있어요. 하지만 그가 했던 말은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답니다.
마음속의 38선이 무너지고야,
땅 위의 38선도 무너뜨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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