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집

개화사상을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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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집은 1842년 한성부에서 태어나 자랐어요. 그는 성장하면서는 고전 한학을 두루 익히면서도 실학에도 관심을 갖고 여러 사람과 사귀었어요. 실학은 조선 후기에 나타난 여러 가지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등장한 새로운 경향의 학문과 사회 개혁론이에요.


25살이 되던 1867년 김홍집은 성균관에 유생으로 들어가 바로 과거에 급제하여 승정원에서 일하였어요. 김홍집은 이조참판을 지낸 아버지 김영작으로부터 학문과 공직자의 태도에 대해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김영작은 당대의 많은 학자들과 교류하였는데, 특히 개화파의 선구자인 박규수와 친분이 두터운 사이였어요.


당시 박규수의 집은 오경석·유대치·김옥균·박영효·홍영식·서광범 등의 개화파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었어요. 김홍집도 이곳을 출입하며 이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개화사상을 배우게 되었지요.


1875년 김홍집은 흥양(지금의 전남 고흥) 현감을 지내면서 일을 잘해 백성과 정부의 신망을 받았어요. 이후 그는 여러 관직을 거치며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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