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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진적 개화를 주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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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정신적 지주인 박규수가 사망하자 구심점을 잃은 개화 세력은 두 파로 갈라졌어요. 한 파는 조선 사회가 중국의 자강운동(양무운동)을 모델로 하여 점진적으로 개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온건 개화파였고, 다른 한 파는 일본의 메이지 유신과 같이 개화를 급진적으로 추진하여 사회 개혁을 하루빨리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급진 개화파였어요.


온건 개화파에는 김홍집·어윤중·김윤식·김기수·박정양 등이 있었어요. 이들 대부분은 개항 이후 나라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던 집권 세력에 속해 있었어요. 이들은 서양의 과학과 기술은 조선이 시급하게 받아들여야 하지만, 종교나 사상은 서양보다 동양이 더 우월하므로 굳이 본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였어요.


한편 급진 개화파에는 김옥균·박영효·박영교·서광범·서재필(후에 참여) 등이 있었어요. 이들은 박규수가 사망한 뒤 유대치의 지도를 받게 되면서 급진적인 개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였어요.


이들은 서양의 과학·기술뿐만 아니라 사상·제도·문화까지도 조속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였어요. 온건 개화파와 급진 개화파 모두 개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개화의 수용 방법이 달랐어요. 이 두 세력이 각각 조선의 정치 중심부에서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조선의 운명도 달라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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