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서 활동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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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에 도착한 김마리아는 그곳에 먼저와 독립운동을 하고 있던 고모들의 보살핌 속에서 점차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어요. 그 후 난징에 있는 진링대학에 입학해 못다 한 공부를 하면서 상하이의 대한애국부인회에서 활동했어요.
또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의 의원이 되었어요. 임시의정원은 입법부에 해당하는, 지금의 국회와 같아요. 황해도 의원으로 선출된 김마리아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국회의원이 되었어요.
이 무렵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조직이 크게 흔들렸어요.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서 독립운동 방법을 둘러싸고 의견 차이가 생겼기 때문이죠.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23년 국민 대표 회의를 개최했어요. 김마리아는 대한애국부인회 대표 자격으로 이 회의에 참가하여 임시정부를 끝까지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김마리아와 달리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임시정부를 떠났어요.

김마리아(왼쪽)가 안창호(중앙), 차경신(오른쪽)과 함께 찍은 사진
독립기념관
이 모습을 지켜본 김마리아는 상하이를 떠나 미국에 가기로 했어요. 못다 한 공부를 마치기 위해서였죠. 미국에는 삼촌 김필순과 의형제를 맺은 안창호가 살고 있었기 때문에 도움을 받을 수 있었어요.
김마리아는 1923년 미국에 도착하여 9년 동안 살면서 파크대학, 시카고대학교, 콜롬비아대학교, 뉴욕신학교 등 여러 학교에서 공부했어요. 그러면서 미국에서 유학 중인 여학생들을 중심으로 근화회를 만들어 회장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의 끈을 놓지 않았어요.
근화회는 출판과 강연으로 일본의 식민 지배 아래 고통받는 조선인들의 처지를 해외에 널리 알리고,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모아 보내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예요.

김마리아
정신여자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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