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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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 후 교육 활동에 힘쓰며, 신사참배를 거부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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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김마리아는 마침내 우리나라로 돌아올 수 있었어요. 재판으로 선고받은 징역 3년의 시효가 끝나 감옥에 가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일본의 감시 속에 드러내놓고 독립운동을 할 수는 없었어요.


김마리아는 원산에 있는 마르타 윌슨 여자신학원 교수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쳤어요. 고난을 받은 이스라엘 민족 이야기를 빗대어 일본의 지배를 받는 우리 민족의 상황을 설명하며 학생들의 애국심을 길렀어요.


김마리아가 우리나라에 돌아오기 전인 1931년 일본은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 지역을 차지했어요. 또 1937년에는 중일전쟁을 일으켜 중국 본토를 침략하고 전쟁을 계속 확대했어요. 이에 일본은 우리 민족을 전쟁에 내몰기 위해 여러 가지 정책을 추진했어요.


그중에는 일본 종교 사원인 신사에 가서 절하는 것을 강요하는 ‘신사참배’도 있었어요. ‘신사참배’는 기독교에서 금지하는 우상숭배를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기독교 신자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어요. 당시 우리나라 교회 지도자 중에는 일본의 강요를 받아들여 ‘신사참배’를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김마리아는 ‘신사참배’를 끝까지 거부했어요. 그러면서 기독교 여전도회 회장으로 활동했어요.

일본의 식민 지배 시기 다양한 방법으로 독립운동을 펼치던 김마리아는 우리나라의 광복을 지켜보지 못하고 1944년 3월 고문 후유증으로 얻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어요.


김마리아는 숨을 거둘 때 자신을 화장해서 평양 대동강 물에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겼어요. 그래서 다른 독립운동가들과 달리 묘소가 남아 있지 않아요. 김마리아를 좀 더 알고 싶은 친구가 있다면 ‘김마리아길’을 답사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김마리아길’은 서울 종로 5가에 그녀가 다녔던 연동교회에서 시작해서 김마리아의 활동 내용이 전시된 여전도회관까지 조성된 코스를 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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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마리아 길 표지판(서울 종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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