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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립 대학 설립 운동이 펼쳐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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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초 이상재 등을 중심으로 민립 대학 설립 운동이 일어났어요. 당시 일제는 한국인을 위한 교육은 되도록 낮은 수준의 실업 교육으로 끝낸다는 교육 정책을 펴고 있었어요. 그래서 국내에는 고등 교육 기관으로 전문학교 몇 개가 있을 뿐이었고, 대학은 없었지요. 이에 일제의 교육 차별에 저항하여 우리의 힘으로 한국인을 위한 대학을 세우자며 모금 운동이 펼쳐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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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립대학기성회 창립총회 기념 사진

독립기념관 제공




1922년 민립 대학 설립 운동에 함께 뜻을 모은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조선민립대학설립기성회’를 조직하였어요. ‘기성회’란 목적한 바가 이루어지기를 기약하는 모임이라는 뜻이에요. 그리고 〈민립대학기성회 발기 취지서〉를 발표하였어요.

… 그러므로 오늘에 우리 조선인도 세계의 한 모퉁이에서 문화 민족의 일원으로 다른 사람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우리의 생존을 유지하며 문화의 창조와 향상을 꾀하려면 대학의 설립을 포기하고는 다시는 다른 방법이 없다. …


-「민립대학기성회 발기 취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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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립대학 기성회 발기인 총회 기사(동아일보 1923년 3월 30일)

총회에서 이상재가 의장으로 선출되었다는 내용 등이 보도되고 있다.

동아일보




민립 대학 기성회는 전국에 100여 개의 지부를 두고 자금을 모으기 시작하였어요. 대학 설립 계획도 구체적으로 세웠지요. 민립 대학 설립 운동은 일제의 교육 정책에 대항하여 민족의 실력을 키운다는 면에서 의미가 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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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립대학 기성회 선전 강연회 기사(동아일보 1923년 4월 20일)

한용운이 강연했다는 내용을 전하고 있다.

동아일보




민립 대학 설립 운동이 활발해지자 일제는 당황했어요. 일제는 총독부의 허가 없이 마음대로 대학 설립을 추진하는 것은 불온한 사상의 영향 때문이라고 주장하였어요. 아쉽게도 민립 대학 설립 운동은 일제의 계속된 방해와 탄압으로 실패하고 말았어요.


그러나 일제는 우리 민족의 높은 교육열에 비추어 언제까지나 대학 설립을 막을 수는 없다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그들의 통제가 가능한 관립 대학 설립을 준비하기 시작했어요.


결국 1924년 관립 대학인 경성 제국 대학이 문을 열었어요. 일제는 경성 제국 대학이 일본의 도쿄 제국 대학 등과 같은 급의 대학이라고 선전하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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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제국대학병원 사진엽서

경성 제국 대학은 1924년 대학교 예비교육 과정인 2년제 예과로 출발하였다.

서울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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