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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회가 결성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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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독립운동가들이 모두 같은 목표를 갖고 활동했던 것은 아니었어요. 당시 독립운동 세력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뉘었어요. 한 갈래는 민족의 독립과 발전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민족주의 세력이 있었어요. 다른 갈래는 사회주의 사상에 따라 노동자와 농민이 중심이 되는 나라를 세우려는 사회주의 세력이 있었지요.

그런데 민족주의 세력 가운데에는 일제의 식민 통치를 인정하면서, 그들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자치권을 얻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이것을 ‘자치 운동’이라고 해요. 그런데 이런 식으로 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독립운동을 포기할지도 모르는 일이었어요. 그리하여 점차 일제의 논리를 받아들이면서 친일파가 되어 버린 사람들이 생겨났던 것이에요.


대표적인 인물이 당시 유명한 소설가였던 이광수였어요. 그는 1922년에 우리 민족이 무능하여 독립이 불가능하다고 하면서 ‘민족 개조의 글’을 발표했어요. 한발 더 나아가 2년 뒤에는 『동아일보』 사설에서 ‘조선 총독부가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정치를 해야 합니다.’라고까지 주장하였어요.


유명 인사가 독립을 포기하고 자치부터 하자고 주장하자, 그 영향은 매우 컸어요. 이에 안재홍, 홍명희, 이상재 등의 민족주의자들은 그들을 비난하며 대응 방법을 의논했어요. 잘못하면 총독부를 등에 업은 자치 운동 세력이 커져 사람들이 독립에 대한 의지가 없어질 것을 우려했어요. 그렇다고 생각이 다른 사회주의 세력과 함부로 손을 잡기도 난처했지요.

민족주의자들은 치열하게 논쟁을 벌인 끝에 결단을 내렸어요. 생각의 차이를 뛰어넘어 사회주의자들과 손을 잡기로 말이죠. 그리하여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이 사상의 차이를 넘어 한데 뭉친 일제 강점기 최대의 민족운동 단체인 ‘신간회(新幹會)’가 탄생하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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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회 창립대회 전경(중외일보 1927년 2월 17일)

1927년 2월 15일 19시 서울 종로 중앙기독교청년회관 신간회 창립대회 개최

중외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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