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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실력 양성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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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실력 양성 운동
조선, 민족 실력 양성 운동을 펼치다
식민 통치 방법이 달라지다
신문과 잡지가 발행되다
물산 장려 운동이 일어나다
민립 대학 설립 운동이 펼쳐지다
신간회가 결성되다
신간회, 독립을 위한 단결의 목소리를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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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실력 양성 운동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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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조선, 민족 실력 양성 운동을 펼치다
물산장려운동 포스터동아일보“지금 독립은 당분간 힘드니, 우리 조선인은 마땅히 종교·산업과 같은 문화적 사업에 열중하여 실력 양성에 힘을 다해야 할 것이다.”1920년대 일부 민족 지도자들은 독립운동은 잠시 멈추고 우선 경제·사회·문화 분야에 온 힘을 집중하여 민족의 실력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하며 운동을 펼쳤어요. 그들의 생각은 옳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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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09-02
6
식민 통치 방법이 달라지다
3·1운동은 일제에게 매우 큰 충격을 주었어요. 우리 민족의 엄청난 힘을 보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들은 생각했어요.“조선을 통치하는 방법을 바꿔야겠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일단 그들의 마음을 누그러뜨려 풀어주는 척해야겠다.”일제는 그동안 힘으로 밀어붙이던 무단 통치를 그만두었어요. 대신 식민 통치 방법을 바꿔 우리 민족에게 조금이나마 자유를 주는 ‘문화 통치’를 실시하였어요.우선 일제는 헌병 경찰 제도를 폐지하였어요. 그러나 실제로는 보통 경찰 제도로 바꾸면서 오히려 경찰의 수를 크게 늘렸지요. 또한 일제는 현역 군인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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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09-02
5
신문과 잡지가 발행되다
문화 통치가 시작되면서 일어난 큰 변화 가운데 하나는 우리나라 사람이 발행하는 신문과 잡지가 많이 생겨났다는 점이에요. 일제는 정책을 바꾸어 우리 민족이 만든 신문과 잡지 발행을 허가해 한국인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해 주고, 대신 그 내용을 철저히 감시하기로 한 것이지요. 이때 발행 허가를 받은 대표적 신문이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였어요.이들 신문은 식민 통치를 비판하는 기사를 많이 실었어요. 독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고, 매일 수만 부 이상 발행하는 인기 신문이 되었지요. 그러나 수차례에 걸쳐 신문을 압수당하는 등 어려움을 겪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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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09-02
4
물산 장려 운동이 일어나다
1920년대 들어서 일제는 회사령을 폐지하였어요. 회사령은 총독부의 허가 없이는 회사를 세울 수 없도록 한 제도에요. 회사령 폐지로 우리 기업들은 다소나마 숨통이 트였어요. 그러나 곧 우리 기업들은 일제의 보호를 받는 일본 기업들과 힘겨운 경쟁을 해야 하는 무척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어요.당시 일본 상품은 총독부의 지원으로 값도 싸고 품질도 좋았어요. 그렇다 보니 우리 기업의 상품은 경쟁에서 밀렸지요.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우리 기업은 살아남기 힘들었어요. 이런 상황에서 1920년대 초 조만식의 주도로 평양에서 물산 장려 운동이 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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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09-02
3
민립 대학 설립 운동이 펼쳐지다
1920년대 초 이상재 등을 중심으로 민립 대학 설립 운동이 일어났어요. 당시 일제는 한국인을 위한 교육은 되도록 낮은 수준의 실업 교육으로 끝낸다는 교육 정책을 펴고 있었어요. 그래서 국내에는 고등 교육 기관으로 전문학교 몇 개가 있을 뿐이었고, 대학은 없었지요. 이에 일제의 교육 차별에 저항하여 우리의 힘으로 한국인을 위한 대학을 세우자며 모금 운동이 펼쳐졌어요.조선민립대학기성회 창립총회 기념 사진독립기념관 제공1922년 민립 대학 설립 운동에 함께 뜻을 모은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조선민립대학설립기성회’를 조직하였어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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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09-02
2
신간회가 결성되다
1920년대 독립운동가들이 모두 같은 목표를 갖고 활동했던 것은 아니었어요. 당시 독립운동 세력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뉘었어요. 한 갈래는 민족의 독립과 발전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민족주의 세력이 있었어요. 다른 갈래는 사회주의 사상에 따라 노동자와 농민이 중심이 되는 나라를 세우려는 사회주의 세력이 있었지요.그런데 민족주의 세력 가운데에는 일제의 식민 통치를 인정하면서, 그들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자치권을 얻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이것을 ‘자치 운동’이라고 해요. 그런데 이런 식으로 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독립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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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09-02
1
신간회, 독립을 위한 단결의 목소리를 내다
1927년 2월 15일 좌우 양쪽의 독립운동가들이 경성 기독교 청년회관(YMCA)에 모였어요. 언론계 대표 신석우와 안재홍, 기독교계 대표 이승훈, 천도교계 대표 권동진, 불교계 대표 한용운, 조선공산당 대표 한위건 등 28명을 발기인으로 정했어요. 그들은 신간회를 창립하고 회장에 이상재, 부회장에 홍명희를 뽑았어요.신간회는 민족의 정치·경제적 각성, 민족의 공고한 단결, 일체의 기회주의 반대 등 강령 3개 항을 채택하고, 독립운동 진영의 단결과 일제와의 타협 없는 대결을 분명히 했어요.이상재와 홍명희한국학중앙연구원, 국사편찬위원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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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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