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작은 이야기: 13도 창의군과 신돌석
본문
1907년 일본은 헤이그 특사 파견을 구실로 고종 황제를 강제로 내쫓았어요. 이 소식을 전해 듣고 흥분한 백성들은 친일 단체와 경찰서를 습격하고 친일파 이완용의 집에 불을 질렀어요.
“남의 나라 황제를 제멋대로 쫓아내다니, 천하의 날강도 같으니.”
그러나 일본은 아랑곳하지 않고 대한 제국 군대마저 해산시켜 버렸어요. 한 나라의 국민을 지켜 줄 군대조차 없는 나라라니요.
1907년 군대가 해산되자 쫓겨난 많은 군인들은 의병 부대에 들어갔어요. 잘 훈련받은 군인이 성능이 뛰어난 근대식 무기를 가지고 의병 부대에 합류하자 의병의 조직력과 전투력은 더욱 높아졌지요. 이제 의병 운동은 기존의 차원을 넘어 의병 전쟁으로 발전하게 되었지요.
의병장 이인영은 각 지방 의병장들에게 힘을 합쳐 서울로 쳐들어가자고 호소하였어요. 이에 전국 각지에서 의병 부대들이 양주로 모여들었고, ‘13도 창의군’이라는 의병 연합 부대가 만들어졌지요. 총병력은 해산된 군인 3,000여 명을 포함하여 1만여 명에 이르렀어요.
이때 신돌석도 기쁜 마음으로 경상도 의병을 대표해 의병 1,000여 명을 이끌고 올라왔어요. 아, 그런데 무슨 일일까요? 13도 연합 의병 부대 재편 과정에서 신돌석 부대가 제외된 것이에요.
신돌석이 이끄는 의병 부대의 활약은 조선 사람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고, 태백산 호랑이라 불리며 일본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어느 의병장 못지않게 사람들의 칭송을 받고 있는데 말이지요. 무슨 이유일까요?
13도 창의군의 구성을 보면 총대장 이인영, 군사장 허위를 포함하여 민긍호, 이강년, 권중희 등 전국 각도의 의병 부대가 다 모였지요. 이들의 공통점이 있었어요. 이들 의병 대장은 모두 양반 또는 유생 출신이었어요.
신돌석은 비록 큰 공을 세운 의병장이지만, 평민 출신이라는 이유로 개편된 13도 창의군에 편성되지 못한 것이에요. 당시에는 양반 출신만 의병장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지요. 나라를 구하는데 양반, 평민이 따로 있을 수 없지요. 13도 창의군이 가진 큰 한계이자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어요.
그래서 그런지 13도 창의군의 서울 진공 작전은 폭넓은 민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였어요. 그 가운데 허위가 이끄는 300명의 선발대가 먼저 서울 부근까지 진격했으나 일본군의 우세한 화력에 밀려 실패하고 말았어요.
게다가 총대장 이인영은 서울 진격을 눈앞에 앞두고 부친상을 치르러 내려가 버리고 말았어요. 허위가 이를 이어받아 작전을 전개하였지만, 일본군에 의해 체포되어 순국하였지요.
이후 일본은 가장 강력한 저항세력인 삼남 지방의 의병 부대들을 제거하기 위해 조직적이고도 대규모적인 작전을 펼쳤어요. 결국 이 땅에서는 더 이상 의병 활동을 벌이기 어려워지자, 의병들은 만주 등지로 옮겨가 독립군으로 활동을 이어갔지요.
나라가 힘이 약해지면 사람들 모두 힘든 삶을 살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어쩔 수 없이 나라가 위급해지는 상황이 닥칠 수 있어요. 그런 일이 없도록 우리 모두 노력해야 하겠지만, 만약 나라가 위급해진다면 옛날 의병처럼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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