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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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 베델과 함께 신문을 발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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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늑약이 맺어진 직후 양기탁은 영어 번역을 하던 관직에서 물러나게 되었어요. 그 이유는 그가 발행하던 신문에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는 글이 실렸기 때문이지요. 그 신문이 뭐냐고요? 바로 ‘대한매일신보’에요. 대한매일신보는 고종 황제의 개인 돈인 내탕금과 몇몇 사람의 자금을 지원받아 1904년에 세워진 신문사에요. 일제의 검열을 피하려고 영국인 기자 베델을 사장으로 임명했어요.


대한매일신보는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이를 강요한 이토 히로부미와 일본을 비판하는 글을 실었어요. 또 을사늑약이 무효라는 내용을 담은 고종 황제의 문서가 다른 나라에 전달되었다는 사실도 알렸지요. 대한매일신보가 이런 활동을 펼치는데 양기탁은 큰 역할을 했어요.


그러니 양기탁을 좋게 볼 리 없었던 일본 정부가 고종 황제에게 압력을 넣어 그를 관직에서 물러나게 한 것이에요. 관직에서 물러난 양기탁은 대한매일신보를 펴내는 일에 더욱 힘을 기울였어요.


“오늘 대한매일신보에 실린 의병 소식 읽었나?”


“나도 읽고 싶어 신문을 사러 갔는데 구할 수가 없었네.”

“벌써 다른 사람들이 다 사 갔나 보군.”


대한매일신보는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읽는 신문이 되었어요. 항일 운동에 대한 기사가 실리는 날에는 신문이 다 팔려 구할 수 없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고 해요. 당시 한국인이 만든 다른 신문들은 일본이 만든 법 때문에 일제에 저항하는 글을 쓸 수 없었어요. 그런 기사가 실리면 기사가 삭제되거나 신문 발행이 정지되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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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델과 초기 신문사의 모습

배설선생기념사업회




그런데 대한매일신보는 이것을 피할 수 있었어요. 공동 발행인 영국인 베델 덕분이랍니다. 당시 일본은 영국과 아주 친한 사이여서 영국 사람이 발행하는 신문에 마음대로 간섭을 할 수 없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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