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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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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진 빚을 갚지 못하면 우리 땅을 떼어주어야 할 일 생길 수 있습니다. 돈을 모금하여 이를 갚아야 합니다. 이천만 동포가 담배를 끊고 돈을 모으면 일본에게 진 빚을 모두 갚을 수 있습니다.”


1907년 일본에 진 빚을 갚자는 국채보상운동이 대구에서 일어났어요. 대한제국이 일제에게 빌린 돈은 1,300만 원이었어요. 당시 한 해 동안 나라 살림을 하는데 필요한 돈이 약 790만 원 정도였다고 하니 빚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죠.


“국채보상운동은 우리나라에 꼭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 신문에 이 사실을 알려 사람들이 관심을 두도록 해야 합니다.”


양기탁이 중심이 된 대한매일신보는 국채보상운동을 나라 곳곳에 알렸어요. 그러자 대구뿐만 아니라 전국에 걸쳐 많은 사람이 이 운동에 참여했어요. 남자들은 모금을 위해 담배를 끊고 술도 마시지 않았어요. 부녀자들은 비녀와 가락지 등을 팔아 돈을 마련했지요. 고종 황제도 담배를 끊겠다고 발표할 정도였어요. 심지어는 일본이나 미국 등 해외에서도 사람들이 운동에 참여했어요.

국채보상운동은 1년 동안 계속되었어요. 그사이 운동을 추진하는 단체가 무려 27개나 생겨났다고 해요. 운동을 효과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여러 단체를 하나로 모아 대한매일신보에 사무실을 두었어요. 대한매일신보의 총무였던 양기탁은 국채보상운동에 함께 참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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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국채보상운동기념관)




그러던 중 일본이 양기탁을 가두고 재판에 넘기는 사건이 일어났어요. 모금한 돈 중 일부를 마음대로 사용했다는 누명을 씌운 거예요. 이후 무죄가 밝혀져 2달 만에 풀려날 수 있었어요. 하지만 국채보상운동은 집요한 일본의 방해로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끝나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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