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탁

신민회를 만들어 독립운동을 펼치다

본문

“안녕하세요? 저는 양기탁 선생님을 만나 뵙기 위해 미국에서 왔습니다.”


“반갑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로 저를 찾아오셨나요?”


“단체를 만들어 우리 민족의 힘을 키워 주권을 되찾는 방법을 의논하기 위해서입니다.”


“좋습니다.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모아 항일운동단체를 만듭시다.”


1907년 4월 미국에서 살던 안창호가 양기탁을 찾아와 항일운동단체를 만들었어요. 단체의 이름은 신민회에요. 일본의 탄압을 피하려고 비밀단체로 만들었어요. 신민회는 우리 민족의 실력을 키우기 위해 평양에 대성학교를 비롯하여 전국 곳곳에 학교를 세웠어요. 그리고 강연회를 열어 근대적 사상을 전파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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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대성학교와 학생들

도산안창호기념관




1909년 봄에는 양기탁의 집에서 신민회 전국 간부회의가 열렸어요. 이 무렵 일본의 계속된 탄압으로 의병항쟁이 점점 어려워졌어요. 신민회 간부들은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모인 것이에요.


“일본에 계속 맞서기 위해는 의병항쟁을 이어받아 독립군을 길러내야 합니다.”


“좋은 생각입니다. 국내에서는 어려우니 만주에 독립군기지를 세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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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에 만들어진 독립군 기지와 무관학교




신민회의 결정에 따라 양기탁은 1910년 8월 독립군 기지를 어디에 만들지 살피기 위해 직접 만주 지역을 돌아다녔어요. 그래서 결정한 곳이 남만주 삼원보(지금의 지린성 통화시 류허현)였어요. 이회영 일가는 자신의 전 재산을 팔아 가족들을 이끌고 이곳으로 갔어요. 그리고 독립군을 키워내는 신흥강습소(신흥무관학교)를 세웠어요.


그런데 안타까운 일이 생겼어요. 독립군 기지를 건설한지 얼마 되지 않아 양기탁을 비롯하여 신민회의 주요 인물이 체포되었어요. 안중근 의사의 사촌인 안명근이 독립군 자금을 모금하다가 잡혔는데 일제가 이 사건을 꼬투리 삼아 신민회 회원들을 잡아들인 것이죠.

일제는 신민회 회원이 일본의 데라우치 총독을 암살하려 했다고 사건을 조작했어요. 그래서 전국적으로 600여 명을 체포하고 그중 105명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어요. 105명에는 양기탁을 포함한 신민회 회원들이 많이 포함되었어요. ‘데라우치 총독 암살미수 사건(또는 105인 사건)’으로 양기탁은 10년 징역형을 받았고 신민회는 사실상 해체될 수밖에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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