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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탁
양기탁, 다양한 방법으로 일제에 맞서다
영어를 번역하는 나랏일을 맡다
영국인 베델과 함께 신문을 발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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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회를 만들어 독립운동을 펼치다
중국에서 독립 운동을 전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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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탁, 다양한 방법으로 일제에 맞서다
한국언론진흥재단(서울 중구)“일본이 대한 제국의 국권을 빼앗아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습니다. 비밀운동 단체를 만들어 항일 운동을 해야 합니다.”“나도 도산과 같은 생각이오. 우리와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 신민회를 만듭시다.”도산은 안창호 선생의 호예요. 안창호와 함께 신민회를 만든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는 일제에 맞서 어떤 독립운동을 펼쳤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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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08-31
5
영어를 번역하는 나랏일을 맡다
양기탁이 바로 안창호와 함께 신민회를 만드는 데 앞장선 사람이에요. 양기탁은 1871년 평양에서 태어났어요. 어릴 때부터 기억력이 뛰어나 한번 들은 것을 잘 잊어버리지 않았다고 해요. 양기탁은 아버지에게 한학을 배웠고 15살이 될 무렵 한성에 왔어요. 새로운 학문을 공부하기 위해서였죠.때마침 한성에는 외국어를 가르치는 학교가 세워졌어요. 이 학교는 서양식 병원인 제중원에서 일하는 의사들을 돕기 위해 만들어졌어요. 양기탁은 이 학교에서 처음으로 영어 공부를 했어요.그러던 중 아버지와 함께 미국인 선교사 게일 박사를 만났어요.“한국어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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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08-31
4
영국인 베델과 함께 신문을 발행하다
을사늑약이 맺어진 직후 양기탁은 영어 번역을 하던 관직에서 물러나게 되었어요. 그 이유는 그가 발행하던 신문에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는 글이 실렸기 때문이지요. 그 신문이 뭐냐고요? 바로 ‘대한매일신보’에요. 대한매일신보는 고종 황제의 개인 돈인 내탕금과 몇몇 사람의 자금을 지원받아 1904년에 세워진 신문사에요. 일제의 검열을 피하려고 영국인 기자 베델을 사장으로 임명했어요.대한매일신보는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이를 강요한 이토 히로부미와 일본을 비판하는 글을 실었어요. 또 을사늑약이 무효라는 내용을 담은 고종 황제의 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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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08-31
3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다
“일본에 진 빚을 갚지 못하면 우리 땅을 떼어주어야 할 일 생길 수 있습니다. 돈을 모금하여 이를 갚아야 합니다. 이천만 동포가 담배를 끊고 돈을 모으면 일본에게 진 빚을 모두 갚을 수 있습니다.”1907년 일본에 진 빚을 갚자는 국채보상운동이 대구에서 일어났어요. 대한제국이 일제에게 빌린 돈은 1,300만 원이었어요. 당시 한 해 동안 나라 살림을 하는데 필요한 돈이 약 790만 원 정도였다고 하니 빚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죠.“국채보상운동은 우리나라에 꼭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 신문에 이 사실을 알려 사람들이 관심을 두도록 해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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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08-31
2
신민회를 만들어 독립운동을 펼치다
“안녕하세요? 저는 양기탁 선생님을 만나 뵙기 위해 미국에서 왔습니다.”“반갑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로 저를 찾아오셨나요?”“단체를 만들어 우리 민족의 힘을 키워 주권을 되찾는 방법을 의논하기 위해서입니다.”“좋습니다.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모아 항일운동단체를 만듭시다.”1907년 4월 미국에서 살던 안창호가 양기탁을 찾아와 항일운동단체를 만들었어요. 단체의 이름은 신민회에요. 일본의 탄압을 피하려고 비밀단체로 만들었어요. 신민회는 우리 민족의 실력을 키우기 위해 평양에 대성학교를 비롯하여 전국 곳곳에 학교를 세웠어요. 그리고 강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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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08-31
1
중국에서 독립 운동을 전개하다
양기탁은 감옥에서 4년간 있다가 1915년에 석방되었어요. 일제는 그가 독립운동을 하지 못하도록 평안남도의 한 시골에서 살게 하며 감시했어요. 양기탁은 일제의 눈을 피해 그곳을 탈출하여 만주로 가서 사람들을 모아 독립 운동을 했어요.그러다 1918년 중국 톈진에서 일제에 붙잡혔어요. 양기탁은 다시 전라도의 한 섬에서 갇혀 2년간 지냈어요. 그곳에서 3·1 운동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양기탁은 3·1 운동이 끝난 후 풀려나 다시 서울로 왔어요.“선생님! 동아일보가 창간되었습니다. 고문을 맡아서 신문 발행에 도움을 주십시오.”양기탁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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