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봉준

동학 농민 운동을 이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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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온 군수는 조병갑과 다르게 행동했어요. 농민들의 마음을 달래려는 마음에서였지요. 하지만 고부 봉기를 조사하러 온 조사관인 이용태가 갖가지 못된 짓을 저질렀어요. 농민들의 재물을 빼앗고, 매질하는가 하면 고부관아 습격에 참여한 농민과 그 가족들을 동학교도라며 마구 잡아들였지요.


상황이 심각해지자 1894년 3월, 전봉준은 농민군을 모아 무장(전라북도 고창)에서 봉기하였어요. 이들은 고부를 점령하고 이후 백산으로 이동했지요. 대나무 창을 든 농민들이 전라도 지역 곳곳에서 하나 둘 백산으로 모여들었어요. 이들 중에는 동학을 믿는 동학교도들도 있었어요. 김개남, 손화중 등이 그들을 이끌었지요.


전봉준은 동학 농민군 앞에서 결의문을 읽어 내려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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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기하는 동학 농민군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다. 근본이 허약하면 나라가 쇠약해진다. 지금 조정과 관리들은 나라를 지키고 백성들을 편안히 할 대책은 생각지 아니하고 녹봉만 받아먹고 있다.”


전봉준은 백성을 구하기 위해 의로운 깃발을 들고 일어났음을 밝혔지요. 군대를 거느리고 서울로 들어가 권력을 잡고 있는 세력들을 모두 없앨 것을 결의했어요.

당시 모인 동학 농민군은 1만여 명에 가까웠어요. 백산에 모인 동학 농민군들이 앉으면 죽산, 서면 백산이었대요. 사람들이 앉으면 죽창만 보이고, 서면 흰옷 입은 봉기군으로 뒤덮인 흰 산이 되었다는 이야기지요.


동학 농민군들의 봉기 소식을 듣고 조정에서 관군을 보내왔어요. 동학 농민군들은 황토현에서 그들을 크게 물리쳤어요. 그 기세를 몰아 황룡촌 전투에서는 장태를 이용해 관군의 공격을 잘 막아내고 승리를 거두었어요. 장태는 닭을 키울 때 사용하는 것인데 안에 짚을 넣어 굴리며 총알을 막는 데 사용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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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를 이용하는 동학 농민군




연이어 승리를 거둔 동학 농민군은 4월 말 전라도 지역의 중심지인 전주성까지 점령해버렸어요. 전주성 점령 소식을 전해 들은 고종은 봉기군에게 해산하라는 명령을 내렸어요. 왕의 명령에도 봉기군이 해산하지 않자 청에 군대를 요청했어요. 청의 군대가 도착하자, 곧바로 일본도 군대를 보냈지요.

일본군의 출동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정부는 동학 농민군에게 그만 싸우고 화약을 맺을 것을 제안했어요. 조선이 청과 일본의 전쟁터가 될 위기에 처하자 동학 농민군도 정부의 제안을 받아들여 전주 화약을 맺었지요. 그들은 탐관오리 처벌, 신분제 폐지, 토지를 균등하게 나눌 것 등의 내용을 담은 개혁안을 실시할 것을 약속받고 스스로 해산했어요.


이후 동학 농민군은 전라도 고을 53곳에 자치 행정 기구인 집강소를 설치하고 농민군 스스로 여러 가지 개혁을 해나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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