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불리는 새야 새야 파랑새야!
본문
우금치 전투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은 뒤 남은 동학 농민군은 흩어질 수밖에 없었어요. 현상금이 내걸린 전봉준도 몸을 피해야 했지요. 한겨울 추운 날씨에 이곳저곳 숨어다니던 전봉준은 전라북도 순창에 있는 부하의 집으로 피신했어요.
하지만 현상금에 눈이 먼 부하가 신고해 체포되어 일본군에게 넘겨졌어요. 전봉준은 체포 과정에서 심하게 다쳤어요. 김개남과 손화중 등 다른 지도자들도 체포되었지요.
재판장으로 나오는 전봉준은 걷지도 못하고 가마에 실려 나왔어요. 그는 아픈 몸을 이끌고 재판을 받았지만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어요.
“백성을 편안하게 하려는 것이 본심이다. 탐관오리들의 못된 짓을 보고 분함을 이기지 못했다.”
동학 농민 운동은 진압되고 전봉준은 처형되었지만, 사람들 마음 속에 영원히 남았어요. 그의 안타까운 죽음에 사람들은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노래를 불렀어요. 녹두장군 전봉준을 기리면서요. 또 그들이 목놓아 주장했던 개혁의 내용은 이후 하나씩 이루어지게 되지요.

잡혀가는 전봉준
130여 년 전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봉기한 전봉준, 시대는 다르지만 전봉준이 바랐던 세상과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비슷한 점이 있어요. 바로 어떠한 차별 없이 사람들 누구나 귀하게 대접받은 세상이지요.
가사 원문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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