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다시 봉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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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 농민군이 해산했는데도 청과 일본군은 물러가지 않았어요. 오히려 일본군은 경복궁을 점령하고 친일적인 허수아비 정권을 세우고 조선의 일에 간섭하려고 했어요. 일본은 청의 군대에 공격을 가해 청일 전쟁을 일으켰고, 조선에서 승리한 후 기세를 몰아 청의 본토까지 공격했지요.
조선에서 일본이 물러가지 않자, 1894년 9월 동학 농민군은 다시 봉기했어요. 삼례지방에 모여든 봉기군은 10만 명 가까이 되었어요. 전봉준이 이끄는 전라도 지역의 동학교도와 손병희가 이끄는 충청도, 경상도 지역의 동학교도와 농민군은 논산에서 다시 모였어요. 공주를 점령한 뒤 한성까지 쳐들어갈 생각이었지요.
동학 농민군이 논산에 모인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정부는 군사를 출동시켰어요. 인천에 상륙한 일본군과 관군이 함께 3갈래의 길로 나뉘어 공격해왔지요. 드디어 동학 농민군의 앞날을 결정지을 전투가 공주 우금치 고개에서 벌어졌어요.

동학 농민군의 활약
“일본 세력을 몰아내고 부정부패한 관리들을 벌주자!”
동학 농민군은 소리 높여 외치며 있는 힘을 다해 싸웠어요. 하지만 신식 무기를 가진 일본군과 관군에 맞서는 일은 만만치 않았어요. 죽음을 무릅쓰고 고개를 향해 오르며 밀고 밀리는 치열한 전투를 이어갔지요. 7일간 50여 차례나 계속된 전투는 결국 동학 농민군의 패배로 끝이 났어요. 살아남은 동학 농민군이 1만여 명 중 5백여 명이었다고 하니, 전투가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지요?
우금치 고개는 여기저기 쌓인 시체로 가득했어요. 동학 농민군뿐만 아니라 정부군도 있었지요. 모두가 조선 사람들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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