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남북 공동 성명을 발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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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8월 15일 이승만을 초대 대통령으로 하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어요. 이어 9월 9일에는 김일성을 중심으로 하는 북한 정권이 수립되었어요. 냉전이라는 국제 질서로 인해 한반도는 남북이 분단이 되고 말았지요.
그리고 남북의 분단은 더 큰 아픔을 불러 왔어요.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6·25 전쟁이 발생한 것이지요. 유엔군(UN군)과 중국군까지 참전하면서 국제 전쟁으로 확대된 6·25 전쟁은 1953년 정전 협정으로 마무리되었어요. 남과 북은 휴전선을 경계로 분단이 더욱 공고해졌지요.
이승만 정부는 북진 통일론을 주장했어요. 북한을 무력으로 공격해 통일을 이루고자 했어요. 4·19 혁명 이후 성립된 장면 정부는 새로운 통일 정책을 추진하려 했지만 몇 달도 되지 않아 박정희 등 일부 군인 세력의 쿠데타로 무너지고 말았어요.
박정희 정부 초기의 남북 관계는 순조롭지 않았어요. 특히 1968년에는 청와대 습격 사건(1·21 사태), 북한 무장공비 침투 사건 등으로 매우 긴장되었어요. 그러나 1970년대 초 세계적으로 미국과 소련 간 긴장이 완화되면서 한반도에도 대화의 가능성이 열렸어요.
이에 따라 1971년부터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남북 적십자 회담이 열렸어요. 여러 번의 회의 결과, 1972년 7월 4일 서울과 평양에서 「7·4 남북 공동 성명」이 발표되었어요. 이를 통해 남과 북은 자주, 평화, 민족 대단결의 3대 원칙을 합의하고, 이를 추진하기 위해 남북 조절 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하였지요.
당시 많은 국민들은 곧 통일이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졌어요. 그러나 국민들의 희망과 달리, 남한은 대통령의 권한을 절대화하고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유신 헌법을 발표하였어요. 북한도 김일성 독재 체제를 강화하는 사회주의 헌법을 제정하며 장기 집권 체제를 확립하였어요.
국민의 기대를 저버린 것이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의 통일 노력은 냉전 속에서도 남북이 직접 대화를 시도한 첫 사례로, 이후 여러 정부들이 추진하는 통일 정책의 기초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요.

7·4 남북 공동 성명을 발표하는 정부 관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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