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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권 상실의 치욕스런 역사, 을사늑약과 경술국치
덕수궁 중명전국가유산청“이는 나라를 팔아먹는 협약이오. 나는 찬성하지 않을 것이오.”“나도 반대하오. 이 조약에 찬성하면 역적이 되는 것이오.”“일본은 조선의 국권을 빼앗으려는 것이 아니라 보호하는 데 목적이 있소. 오늘 기필코 서명해야 할 것이오.”이토 히로부미가 대한제국 대신들을 총칼로 위협하며 조약 체결을 강요했어요. 고종과 여러 대신들은 조약 체결을 반대했어요. 하지만 이토 히로부미는 을사오적이라 불리는 신하들을 앞세워 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였어요. 이 조약으로 대한제국은 무엇을 빼앗겼을까요? 조약으로 인해 대한제국에 어떤 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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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09-01
5
일본, 러·일 전쟁에서 승리하다
청·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청의 랴오둥 반도를 차지했어요. 일본의 한반도와 만주에 대한 지배력이 커지자 러시아, 프랑스, 독일이 나서 랴오둥 반도를 청에 돌려줄 것을 일본에 요구하였어요. 세 나라의 압력에 굴복한 일본은 전쟁 배상금만 받고 랴오둥 반도를 청에 반환했어요. 일본의 침략을 걱정한 청은 랴오둥 반도를 러시아에 빌려주어 지배하게 했어요.러시아의 힘이 일본에 앞서는 것을 본 고종은 러시아를 이용해 일본을 견제하고자 했어요. 그리고 러시아에 의지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자주 독립국을 만들기 위한 개혁을 시도하였어요.청과 전쟁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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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09-01
4
협상과 합법을 가장한 조약에 외교권을 빼앗기다
러·일 전쟁에서 승기를 잡은 일본은 대한제국에서 러시아 세력을 몰아내고 국가 통치의 근본이 되는 재정과 외교권을 장악하기 위해 ‘제1차 한일 협약’을 체결하였어요. 겉으로는 대한제국과 일본이 서로 의논하고 협력하여 합법적으로 체결한 조약처럼 꾸몄으나 고종과 대부분의 대신들을 빼고 일부 친일 대신을 앞세워 체결한 불법적인 강제 조약이었어요.제1차 한일 협약으로 대한제국은 일본인 재정고문과 미국인 외교고문의 협의 하에서만 나랏일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일본은 재정과 외교 영역에서 시작해 국방, 법, 교육, 경제 영역에 고문을 파견하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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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09-01
3
헤이그 특사, 고종의 마지막 승부수
고종은 을사늑약 조약문에 서명과 옥쇄 날인을 하지 않고 끝까지 버텼어요. 그리고 국제사회를 향해 조약이 무효라고 주장했어요. 고종은 헐버트를 통해 을사늑약이 무효라는 긴급 전문을 미국 워싱턴으로 보냈어요.주한미국공사였던 알렌이 귀국할 때 1만 달러를 주며 미국정부가 조약과 관련된 조사를 벌이도록 설득해 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하지만 일본과 비밀 조약을 맺은 미국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았어요. 이전에 ‘조미수호통상조약’까지 맺은 미국의 냉담한 반응에 고종은 크게 실망했어요.이때 러시아의 황제가 네델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제2회 만국평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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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09-01
2
의병, 일본으로부터 한양을 되찾자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전국에서 항일의병이 일어났어요. 한일 신협약으로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되자 많은 대한제국 군인들이 의병에 합류하면서 의병 부대는 보다 강한 전투력을 갖게 되었어요.원주에서 활동하던 이인영 의병장은 전국의 의병들에게 격문을 보내 함께 한양으로 진격하기를 호소하였어요. 이인영의 격문에 1만 명의 의병이 경기도 양주에 모였어요. 연합의병부대 ‘13도 창의군’은 부대별로 나뉘어 한양으로 진격하여 같은 날 동대문 밖에 집결하기로 했어요.13도 창의군 선발대 300명이 동대문 밖 30리(약12km) 지점까지 접근하였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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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09-01
1
역사 속 작은 이야기 :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
일본은 전쟁으로 대한제국 침탈에 방해가 되는 청과 러시아를 이기고, 외교로 대한제국을 국제 사회로부터 고립시켰어요. 그리고 무력을 동원하여 대한제국과 ‘한일 의정서’에서 시작해 ‘을사늑약’과 ‘한일병합조약’까지 여러 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였어요.이러한 조약을 이용하여 대한제국의 주권을 하나하나 빼앗아 갔어요. 이를 주도한 인물이 바로 초대 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였어요. 이토 히로부미는 경쟁하던 러시아와 대한제국과 만주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하얼빈을 향했어요.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안중근(안중근의사기념관)1909년 10월 26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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